백두대간 제12차(신의터재-윤지미산-화령재-봉황산-비재) 산행기록
산행지도
고도표
신의터재에서 갈령삼거리까지...
백두대간길 신의터재에서 갈령삼거리 구간...
남덕유에서 추풍령으로 가라 앉았던 대간길이 다시 속리산으로 접어들기 위해 다시 고도를 높혀갑니다.
'속리산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산줄기가 화령과 추풍령이 되었는데, 시내와 산의 경치가 그윽하다. 모두
낮고 평평하여 살기에 알맞으나 산이라고는 할 수 없다.'
이중환의 택리지의 기록이랍니다. 이는 산의 의미를 ‘높이’에서 찾은 인식의 결과이고 현대 지리학의 개
념으로 말하면 노년기의 산들이라는 군요. ㅎㅎ 비내리는 신의터재...
새벽 3시 40분..
신의터재에 도착한 버스 창으로 보이는 빗줄기가 더 굵어 집니다.
빗줄기가 가늘어지기를 기다리느라 30여분 대기...
하지만 빗줄기는 가늘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군요.
해발 280m 정도인 신의터재는 이번 구간의 모든 고개가 그렇듯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입니다.
임진왜란 이전 이 고개는 신은현(新恩峴)으로 불리었고 임란 때 의병장 김준신이 이 고개에서 의병을 모
아 큰 전공을 세우고 임진년 4월25일 순절한 후부터 ‘신의터재’로 불린다 합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어산재"로 불리다가 광복 50주년을 맞던 해에 제 이름을 되찾았다 합니다.
경북 상주 화동면 그리고 팔음산 포도
이곳 신의터재는 행정구역상 경북 상주시 화동면. 아마도 팔음산 포도가 유명한 곳인가 봅니다.
이곳 화동면 선교1리는 전체 가구가 모두 포도농사를 짓고 있는 마을로서 팔음산의 오염없는 청정지역에
서 자란 포도는 모두 당도가 뛰어날뿐만 아니라 마을의 특 목 작물로 지정되어 농가의 주요 소득원이 되
어 주고 있다는군요.
신의터재의 모습[펌]
비내리는 칠흑같은 어둠속에서 제대로 신의터재의 모습을 담지 못해 인터넷 타 산객의 후기에서 신의터
재의 모습을 몇장 옮겨 옵니다 ㅎㅎ
사진 포장도로를 따라 오르면 왼편에 염소사육장(윗 사진)이 나오고 여기서 대간길은 오른쪽으로 휘어
져 돌아 능선을 오릅니다.
비내리는 어둠속에서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대간 리본을 확인합니다.
■ 신의터재에서는..
해발 280m인 이 나지막한 고개에 대체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일까?
때는 동해 건너의 섬나라 일본이 조선을 전쟁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던 1592년 임진년으로 거슬러 올라간
다. 4월 13일 아침에 대마도를 출발한 왜군 선봉은 물밀듯이 부산앞바다로 밀어닥쳤다.
14일 부산진성, 15일 동래성을 함락한 왜군은 19일엔 언양성을 넘어뜨리고 22일 영천성을 거쳐 별다른
저항도 없이 북진을 거듭했다.
이때 신의터재에서 가까운 상주 화동면 판곡리에 태를 묻은 김준신(金俊臣, 1561-1592)은 이 재에서 의
병을 모은 후 25일 60여명의 관군과 6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상주성을 지키기 위해 왜군 1만 7000여명
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이는 임진왜란 때 내륙에서 본격적으로 벌어졌던 첫 접전이었던 것이다.
중과부적으로 처음부터 이길수 없는 싸움임에도 김준신은 "남아는 마땅히 죽어야 할 장소에서 죽어야 한
다"며 부하들과 함께 왜군 수백명을 죽였다.
왜군은 전투에서 이겼음에도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타격을 입게 되자 분풀이를 하기 위해 김준신 가족
이 살고 있는 화동면 판곡리로 몰려갔다. 결국 마을사람들이 힘을 합쳐 저항했지만 남자들은 거의 학살
당하고 부녀자들은 왜군에게 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마을에 있던 연못에 몸을 던졌는데 그 연못이름이
그래서 낙화담(落花潭)이다.
임진왜란 당시 1,600여평에 이르렀던 낙화담은 지금은 메워져 60평 남짓한 연못으로 변해 버렸다.
[출처 : 백두대간 가는 길]
이땅의 슬픈 역사가 배어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군요!!!
285봉.. 앞고개
출발한 지 약 20여분 지나 앞고개에 도착합니다.
내리는 빗줄기가 등을 때리는 소리가 아조 크군요!!
이미 비옷 사이로 물이 스며들어 바지가 젓어가는 것을 느낌니다.
등산화도 장담하지 못하겠군요!!
빗줄기는 더욱 거세어 지고..
빗줄기는 더욱 거세어지고 함께 하는 산우님들은 말이 없습니다.
내리는 비에 사진 상태가 아주 불량하군요 ㅎㅎ
비옷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에 묵묵히 발 마추어 앞으로 진행합니다. 무지개산(441.4m)
신의터재를 출발한지 약 1시간 20분이 지나 무지개산에 도착했습니다.
산이름이 정감이 어립니다.
무지개라~~~
이산은 무지개와 무슨 관계가 있나 봅니다. 윤지미산(538m)
무지개산에서 잠시 숨을 돌린 후 약 20분이 지나서 다시 윤지미산에 도착합니다.
윤지미산이라는 산이름이 묘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관련된 글을 검색해보니 다음과 같은 글을 인터넷에서 찾았습니다.
■ 윤지미산(538m)
[윤지미산]문의에 대한 상주시장의 답변[2006.2.5.]
우리시의 시정과 백두대간에 관심을 가져 주신데 대하여 감사 드립니다.
먼저 남도생 님께서 문의하신 윤지미산에 대한 산명유래에 대하여 관련 문헌자료를 모두 찾아보았으나,
상세한 유래를 찾을 수가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윤지미산에 대해 알고 계신 분(정옥근, 화서면 거주)이 계셔서 그분의 증언을 토대로 답변을 드리
고자 합니다.
화동면 판곡리와 화서면 신봉리에 걸쳐 위치한 윤지미산(538m)은 원래 소머리산(현재 화서면 밤원 옆
의 산)이라고 하였으나, 정확한 시기와 유래는 알수 없으나 언제 부터인가 윤지미산으로 불려지게 되었
으며, 일부 설에 의하면 윤집걸중(允執乞中)이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로써 “인생전반을 다안다, 세상을 포
용한다, 세상을 두루 알아맞히다” 라는 의미를 가진 산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윤집걸중이라는 말은 四書三經중 大學에 나오는 단어로써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말이
아니라 그 단어에 많은 뜻이 숨어있다고 합니다. [인터넷 블로그에서 펌]
잠시 가늘어진 빗줄기 사이로..
윤지미산을 내려와 첫번째 임도에 도달하기 전 대간길 옆에 펼쳐진 풍경이 잠시 가늘어진 빗줄기 사이
로 살짜기 보여집니다. 오늘 본 첫번째 주변 조망임다 ㅎㅎ 윤지미산을 내려와서 임도를 만나다!!
윤지미산을 내려서서 임도를 만납니다. 임도를 따라 진행하다 우측으로 진행합니다.
렌즈에 빗방울이 맺혔는가?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또 다시 타산객님 후기에서 사진 한장 더 퍼옵니
다 ㅎㅎ 지송!! 비에 젓은 대간길
비에 완전히 젖어버린 등산로를 함께하신 산우님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등산로를 따라 빗물이 흘러내리고 군데 군데 빗물이 고여있어 등산화에 물이 들어갈까 아조 조심스럽습
니다.
이미 등산화를 제외하고는 바지와 팬티까지도 물이 들어간 듯...
롱스패취도 비옷도 이런 비에는 소용이 없습니다!! 또다시 임도를 만나고..
또 다시 능선을 내려서니 임도를 만납니다.
임도를 만나 우측으로 임도를 따라 진행합니다.
잠시 사진을 찍느라 앞선 산우님들 놓치고 좌측 암벽에 리본이 달려있어 잠시 혼란 ㅎㅎ
계속 임도를 따라 진행합니다. 비구름이 잠시 걷힌 사이로..
이 비를 헤치고 오르는 우리에게 조금 미안했나??? 잠시 비구름이 걷히고 정말 오랫만에 주변 조망을 잠
시 보여줍니다 ㅎㅎ 청원-상주간 고속도로 공사현장...
윤지미산을 출발해서 약 50분 후 우측으로 청원-상주간 고속도로 공사현장이 보입니다.
공사는 끝난 것 같은데 무신 이유인지는 몰라도 준공을 아직 않했다는군요???
이제 화령재가 가까워진 듯합니다. 화령재
산행을 시작한 지 약 4시간이 못되어 화령재에 도착합니다.
먼저 도착한 산우들이 정자에서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있군요!!! 화령재 이정표
화령재 이정표입니다. 충북 보은/경북 상주/속리산문장대를 가르키고 있습니다.
내리는 빗줄기가 카메라에 그냥 잡혔군요 ㅎㅎ
화령재 표지석
이곳 화령은 한국전쟁때 낙동강 방어선 전투 중 칠곡군 가산면의 다부동전투 다음으로 치열했던 화령장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라고 합니다. "한국전쟁사"에서는 1950년 7월 17일부터 25일 사이에 화령장 주변에
서 처절하게 벌어졌던 전투를 생생히 기록하고 있다는 군요.
당시 북한 인민군 15사단은 괴산부터 보은에 이르기까지 국군 제1사단을 공격하는 한편 증강된 1개 연대
로 일거에 화령장을 돌파하고 상주를 점령하려고 했답니다.
국군 제6사단의 병참선을 차단해 이를 격파한 후 인민군 제1사단과 협공하여 대구를 점령하려던 계획이
었답니다. 이곳 화령주변은 백두대간을 따라 나 있는 산간도로인 보은-화령장-상주에 이르는 도로와 괴
산-갈령-화령장-상주 도로의 합류지점으로 백두대간을 통과하여 상주로 연결되는 요충지였는데 국군
은 이곳의 중요성을 미리 파악하지 못했고 이를 간파한 인민군은 이곳에 제15사단을 투입하여 집요한 공
격을 감행하였다는 군요.
하지만 화령장 주변에서 인민군 전령을 생포한 국군 제17연대가 적의 작전을 미리 파악하고 화령 동쪽
의 상곡리와 갈령 주변의 동관리에서 각각 매복작전을 펼쳐 남진하는 인민군을 격퇴할 수 있었답니다.
결국 개전이후 밀리기만 하던 국군은 최후의 낙동강 전선 구축에 6일이라는 시간적 여유를 얻게 되면서
반격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고 화령장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제17연대 전 장병은 1계급 특진하였다고
합니다. ㅎㅎ [이상 민병준 저 백두대간 가는 길에서 펌]
낙동강과 금강 분수령 표지
화령재 도로변에 있는 분수령 표지입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출발!!!
8시 50분경 아침식사를 마치고 다시 출발합니다.
화령재에서는 보은방면으로 약 200여미터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 농가를 지나 능선으로 오릅니다.
다시 산능선으로..
앞선 산우님들이 농가 앞으로 해서 능선을 오르고 있습니다.
백두대간 안내문
농가 앞을 지나 능선입구에 백두대간 안내문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산불감시초소
식사를 하고 출발한 지 약 1시간 후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봉우리 정상에 도착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정상에 서 있던 것을 96년도에 지금 자리로 옮겨 놓았답니다. 봉황산을 향하여 된비알을 올라가다!!!
빗방울이 멈추지 않아 봉황산 올라가는 된비알길이 제법 미끄럽기만 합니다. 봉황산
화령재를 출발한 지 약 1시간 30여분이 지나 봉황산에 도착했습니다.
여전히 내리는 비에 온통 하얀 세상이군요...
아름다운 대간능선을 보지 못해 너무 아쉽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곳에서 멀리 속리산 천황봉이 보이고 주변의 주병산, 백화산, 두리봉, 형제봉 등이 한눈
에 보이는 처음으로 조망이 트리는 곳이라는데 아쉽기만 합니다. 봉황산을 내려서서..
봉황산을 내려서서 비재로 향합니다.
제법 가파른 짧은 바위지대를 내려서고 있습니다.
조망이 좋은 전망대 바위(?)
봉황산을 조금 내려서서 만난 전망이 좋은 바위에서 봉황산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운무에 가려 잘 보이지가 않는군요!!
함께 한 산우님들과 사진 몇장 남기고 하산을 재촉합니다. 아주 큰 묘지 하나!!
봉황산을 출발해서 40여분 후 아주 크게 조성해 놓은 묘터를 지납니다.
위에 묘 한기가 있는 것 같은데 아주 크게 조성해 놓았습니다.
키큰 전나무 숲
459.5봉에서 한숨 돌린 후 비재를 향하여 내려섭니다.
비재로 내려가는 길은 키는 전나무 숲이 아주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비에 물기먹은 나무숲길이 오히려 상쾌하기만 합니다. 비재 내려가는 길 이미지 하나 더
아주 시원 시원하게 뻗어 올랐습니다.
비와 어울려 오히려 시원함을 느끼게 해주는 군요!! 비재가 보이다!!
드디어 나무 사이로 비재가 보입니다. 비재!!!
봉황산을 출발한 지 약 2시간이 조금 지나 비재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도착한 산우님은 어느새 옷과 신발을 갈아 입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군요 ㅎㅎ
건너편에 갈령으로 가는 철계단이 보입니다.
이곳 비재는 새가 날아가는 형국이라 조비령(鳥飛嶺)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비재라고 부른답니다. 다음 들머리를 확인하다!!
당초 산행계획은 신의터재에서 갈령삼거리까지 진행하려 했지만 산행내내 내리는 비에 결국 이곳 비재
에서 산행을 접기로 합니다.
비재에서 올려다본 가야할 대간 봉우리가 아조 아조 질리게 하는 군요 ㅎㅎ
다음 구간 산행시작은 바로 이 철계단으로 시작합니다.
누군가 하얀 스프레이로 비재라고 써 놓았군요.. 산행후기를 마치며...
작년 이맘 때도 그랬고 7월의 대간길에는 항상 비와 함께 길을 걸었습니다.
그래도 산행을 시작할 때부터 장대비를 맞으며 시작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ㅎㅎ
개인적으로는 작년 댓재- 두타-청옥-백복령 구간 때 약 6시간 정도 비를 맞은 이후 처음 제대로 우중산
행을 한 것 같습니다 ㅎㅎ
비록 예정된 갈령삼거리까지 가지 못했지만 가지 못한 길은 나중에 가면 되니까!!!
산행 후반 봉황산에서 비재로 내려오던 길 전나무숲속에서는 오히려 내리는 비 덕분에 가져온 모든 잡념
을 버릴 수 있어 너무 좋았습니다.
♧♧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
- 류시화 -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빈 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눈을 감고
내 안에 앉아
빈 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걸
바라봐야 할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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