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록/백두대간(북진)후기

고백두대간 고치령-미내치-마구령-선달산-박달령-옥돌봉-도래기재 산행기록

너울의 산장 2008. 1. 22. 15:45

■ 산행일 : 2008. 1. 19(토)∼20.(일)
■ 산행코스
 ▲▲ 고치령-(7.6)-마구령-(4.9)-갈곶산-(1.03)-늦은목이-(1.77)-선달산-(5.1)-(박달령)-(3.0)-옥돌봉-(2.6)-도래기재 
       // 이상 도상거리 26.00km
      ▶대간구간: 고치령-도래기재    // 26.00km
      ▷접속구간: 좌석리-고치령       //  4.0km(현지 차량 이용)
    ▲ 산행시간: 약  11시간 48분(휴식, 식사시간 포함)
■ 이동경로 및 산행코스
[01/19(토)]
○ 23:00 사당역 출발 
[01/20(일)]
○ 02:44 :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좌석2리 좌석교 도착
      (접속구간을 차량으로 이동) 
○ 03:15 : 고치령(760) 도착 
○ 03:25 : 고치령 출발 산행시작 
○ 04:06 : 950봉 갈림길
       - 877봉 
       - 잡목지대 
       - 830.1봉 
○ 04:28 : 미내치(820m) 
       - 854봉 
       - 헬기장 전망대(1096.6m) 
       - 춘양목지대 
○ 06:13 - 06:27 : 마구령(810m, 좌-남대리, 우-임곡리) 
       - 헬기장 전망대(894m) 
○ 07:35 - 08:20 : 1057봉 헬기장(아침 식사 후 출발)
       - 1057봉(두 번째 봉) 
       - 934봉 
○ 09:08 : 갈곶산(966m) 
○ 09:29 : 늦은목이(좌-남대리, 우-오전리)
○ 10:32 - 10:38 : 선달산(1236m) 상-강원도, 하-경북 도경계
○ 10:57 : 1246봉 
       - 갈림길(우-왕바우골, 물야면 방향) 
○ 12:39 - 12:44 : 박달령(761m, 좌-#샘, 우-오전약수:40분) 
       -1105봉 
○ 14:06 : 내성기맥 분기점(옥돌봉/문수산/박달령 삼거리)
       - 옥돌봉/주실령/박달령 삼거리
○ 14:15 : 옥돌봉(1242m) 전망대 
○ 14:32 : 550년 철쭉 보호수  
○ 15:13 : 도래기재 도착 산행종료
     (88번도로 좌-영월, 우-춘양)
○ 16:30 : 영월/봉화 경계 마을 정자에서 식사 후 귀경
 (이상 도상거리 26.00km, 산행시간 : 11시간 48분, 휴식 및 식사시간 포함)

산행지도

백두대간 고치령-도래기재 구간 산행을 시작하며... 참 힘들게 겨우 겨우 이어가고 있군요!!! 저수재까지 이은 대간길... 잠시 소백산 고향대간길을 접어두고 우선 고치령부터 이어가기로 합니다. 벌재부터 죽령은 내 어린 시절 흔적이 남아 있는 고향 산길입니다. 방곡리, 황정리, 사인암 그리고 죽령... 아껴두었다가 춘삼월에 홀로 어린 시절 이미지를 그리며 다녀올까 합니다.

좌석리 좌석교 19일밤 23시에 사당을 출발한 버스는 새벽 2시 30분이 채 못되어 경상북도 영주군 단산면 좌석리 좌석교 앞에 도착합니다. 한적한 산간 오지마을에 동네 매점 앞 가로등만이 불빛을 밝히고 있습니다. 다리 이름을 살펴보니 좌석교이군요!!

고치령 좌석리에서 미리 예약해둔 1.4톤 정도되는 트럭을 타고 고치령에 도착합니다. 좌석리에서 고치령가는 도로 폭이 좁아서 소형 승용차 정도만 겨우 다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둠 속에서 고치령의 모습이 사진기에 잘 잡히지 않아 타 산우님 후기에서 한장 빌려옵니다. 산산각이 보이는 군요!! ■ 한국의 고개 - 고치령 큰 산 태백과 소백은 그렇게 나뉜다. 고치령에 이르러 마침내 태백은 끝이 나고 이로부터 바야흐로 소백이 시작된다. 고치령 고갯마루 아담한 산신당에는 그리하여 태백 산신과 소백 산신을 함께 모신다. 사람들은 북쪽 영월에서 죽은 단종을 태백 산신이라 믿고 남쪽 순흥으로 유배되었다가 안동에서 죽은 금성대군을 소백 산신이라 믿는다. 그들 조카와 삼촌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고개 고치령이 오죽 이나 한스러웠으랴. 지금도 정월 열 나흗날이면 어김없이 산신제를 지내니 형과 삼촌에게 죽은 그들의 넋을 달래기 위함이란다. 이미 백두대간을 넘었지만 땅은 아직도 경상도 땅이다. 산신당 고갯마루 남쪽의 물은 낙동강으로 흘러가고 북쪽의 물은 장차 한강에 닿지만 웬일인지 영북과 영남의 경계는 보이지 않는다. 짐짓 올라온 길의 두 배는 될 법한 내리막길 끝에 그렇게 외떨어진 경상도 마을이 하나 숨었으니 이름하여 마락리(馬落里)다. 슬그머니 백두대간을 넘어와 유일하게 한강수계에 터를 잡은 경상도의 서러운 의붓아들. 마을 골짜기 말굽이 바위에서 순흥과 영월을 오가던 보부상 행렬의 말들이 자주 떨어져 죽었다 하여 이름을 그렇게 부른다. 한때 고치령 너머 단산면 옥대초등학교의 분교가 마락리에 있었다. 1964년에 문 을 열어 모두 147명의 졸업생을 세상으로 내보낸 마락분교는 지난 1991년 문을 닫았다. 산간에 이미 아이 울음소리 그쳤으니 학교인들 더 무슨 소용이 있었으랴. 집도 하나같이 낡은 옛집이고 골짜기 논밭들도 많이 묵었다. 벼농사의 벌이가 워낙 시원찮은 탓인지 논이며 밭이며 모두 기장이나 율무 같은 밭작물을 심었다. 버스가 다닐 리 만무한 이 궁벽한 오지 마락리에 사는 일이 참으로 신통하기만 하다. 골짜기를 따라 마락리 서낭당을 지나면 길은 마침내 충청도로 넘어서니 그 곳이 바로 정감록의 땅 의풍이다. 의풍 또한 그로부터 사방 어느 길이든 몇 십리 큰 재를 넘어야만 대처로 통하는 충청도 제일의 오지 마을이다. 동쪽으로 마구령(해 발 820)을 넘으면 바투 부석사 기슭으로 내려서고 서쪽은 면소재지 영춘으로 넘는 50리 베틀재가 가로막혔다. 남쪽은 고치령이요, 북쪽으로 삿갓 시인 김병연의 무덤이 있는 노루목을 지나면 영월에 닿는다. 의풍 골짜기 끝에 여섯 집이 사는 어은동(마을의 생김이 고기가 숨은 모양이라 하여 그렇게 불린다) 뒤편에 솟은 삼도봉(해발 1063)에서 강원과 충북과 경북이 갈린다. 가장 큰 마을인 솔밑에는 장터거리가 있다. 한때 삼도의 행상들이 모여 제법 큰 난장을 벌였지만 지금은 새술막 하나도 남은 게 없다. 솔밑에 사는 박경환(51)씨는 정감록의 비결지(秘訣地)를 찾아 의풍에 자리를 잡은 조부로부터 4 대를 이 곳에서 살았다. 그때만 해도 억센 내륙의 장꾼들이 모두 모여 사람 구경, 돈 구경, 싸움 구경으로 신물이 났었다고 옛날을 회상한다. 의풍 사람 열의 아홉은 한결같이 정감록의 후예들이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들은 태백과 소백이 품은 정감록의 비결지가 바로 의풍이라 믿는다. 와골에 사는 조광노(47)씨 역시 정감록 한 권 달랑 품고 청송에서 이 곳으로 솔가하여 온 조부 이래 4대를 살았다. 그의 부친이 그러했고 그의 삶 역시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산간에 그저 있는 대로 심고 거두어 욕심 없이 산다. 김창현(69, 와골)씨는 30여년 전에 본인이 직접 삼척에서 솔가하여 의풍으로 왔다. 한문 공부가 깊은 그는 정감록이 아니라 격암 남사고의 비결서를 보고 이 곳에 뿌리를 내렸다 한다. 그는 지금도 손수 농사를 짓는다. 삶이 이미 황혼에 닿았지만 그의 몸짓 하 나, 말 한마디는 더없이 정갈하고 공손하다. 언뜻 비승비속(非僧非俗)이란 말도 제 값을 다 못하는 듯 싶다.[이상 백두대간 한마당에서 펌]

고치령 이정표 고치령 정상에 있는 이정표 입니다.

고치령을 출발하다!!! 제법 눈이 왔나 봅니다. 등산로에는 눈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서둘러 아이젠과 스패취를 챙기고 3시 20분 경 고치령을 출발합니다.

950봉(?) 갈림길 고치령 산신각 뒤로 시작해서 서서히 오름길로 시작되더니 헬기장도 지난 것 같고 여기까지 계속해서 오름길입니다. 고치령에서 마구령까지는 8.0km인데 소백산 국립공원 관리구역이라 그런지 0.5km 간격으로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랜턴 불빛에 의지해서 진행하니 어디가 어디인지 추정도 않되는군요!! 아마도 시간과 거리 상으로 여기 쯤이 950봉 갈림길인 듯 합니다. 950봉 못가서 나오는 이 갈림길에서 대간은 좌측사면길로 꺽입니다.

미내치(820m) 고치령을 출발해서 약 1시간 후 미내치에 도착했습니다. 고치령서 미내치까지 3.2km인데 아무리 새벽이지만 정말 무서운(?) 속도로 왔군요 ㅎㅎ

마구령 미내치에서 1시간 40분 정도 지난 후 마구령에 도착했습니다. 고치령에서는 약 2시간 40분이 소요되었습니다. 마구령은 차량소통이 가능한 고개로 산림청에서 세운 돌로 된 표지석과 휴게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예서는 늦은목이 방면으로 다시 오름길이 시작됩니다. 맨 아래 시진은 타 산우님 후기에서 빌려온 마구령의 모습입니다. ■ 마구령 마구령(해발 810m)은 동해안을 따라 남으로 힘차게 내닫던 백두대간은 태백산을 일으킨 뒤 서쪽으로 방향을 휙 틀어 소백산과 속리산을 잇달아 빚고 내륙을 가로지른다. 마구령은 소백산 정상 비로봉 동편에서 백두대간을 넘는 고개 중 하나다. 마구령 양편에는 영주시 부석면 면소재지와 오지마을 남대리(역시 부석면)가 각각 자리잡고 있다. 부석면 읍내는 끝자리가 1, 6일인 날에 장이 서는 큰 동네다. 영주 사과가 이곳에서 자라며 배흘림 기둥이 아름다운 부석사 무량수전도 읍내에서 멀지 않다. 고개 너머 남대리에는 남대천이라 불리는 개울이 하나 흐른다. 백두대간 상의 선달산(1236m)에서 발원한 이 개울은 남한강의 최상류다. 남대리에서 남대천을 따라 3㎞쯤 가면 행정구역이 바뀌어 충북 단양군 영춘면 의풍리가 되며 의풍에서 노루목이라는 작은 고개를 하나 넘으면 행정구역이 또 달라져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이다. 옛적에는 영월군 하동면과 단양군 영춘면에서도 마구령을 넘어 부석장에 오곤 했다 (부석면.영춘면.하동면 3개 면 사람들은 매년 봄 번갈아 가며 '3도 접경 단합 체육대회'를 연다). 장꾼이 많다 보니 남대리 쪽의 고개 초입에는 주막도 많았다. 단양이나 영월 쪽에서 온 장꾼들은 저녁때쯤 남대리에 당도해 주막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아침 고개를 넘었다. 장꾼 중에는 소나 말을 끌고 온 사람도 많기에 주막에는 소나 말을 맬 수 있는 마구간이 딸려 있었다. 마구령이라는 이름이 '마구간'에서 온 것인지도 모르겠다. 주막거리에는 7, 8년 전까지만 해도 영업을 하는 주막이 몇 집 있었다. 지금도 주막 건물이 셋 남아 있어 이곳 지명은 여전히 주막거리다. 부석면소재지에서 고갯마루까지 올라가는 길. 제법 가파르지만 뒤를 돌아보면 힘이 생긴다. 발 아래 펼쳐지는 영주시 전경, 그리고 동편으로 펼쳐지는 소백산의 뭇 봉우리가 시원하다. 고갯길 양 옆으로 이깔나무 군락이 참 곱다. 고갯마루에 서니 목이 제법 마르다. 주막이 없어지기 전에 와야 했던 것을. [이상 중앙일보 기사 펌]

마구령 지나 첫번째 헬기장 당초 마구령에서 아침식사를 하려고 했으나 아직 날이 밝지 않아 더 진행합니다. 마구령에서는 늦은목이 5.9km, 선달산 7.8km가 남았다는 이정표 옆으로 오름길로 올라야 하는데 등산로에 나 있는 발자욱을 따라 잠시 죄측 경사면으로 진행하다 다시 되돌아 오는 알바를 합니다 ㅎㅎ 헬기장을 지나 마구령 1.5km이정표가 있는 곳까지 계속 완만한 오름길이다. 언뜻 타 산우님 후기에서 본 헬기장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진을 남기지 못하고 지나쳤습니다. 역쉬 타 산우님 후기에서 사진 한장 빌립니다.

1,057봉 헬기장 마구령을 출발한 지 약 1시간여 지나 두번째 헬기장인 1,057봉 정상 헬기장입니다. 여기서 아침식사를 하고 출발합니다. 역쉬 무엇에 홀렸는지... 사진기는 폼으로 가지고 다니는지.. 사진 한장 못 남겨서 또 다시 빌려옵니다. ㅎㅎ

갈곶산(966m) 1,057봉 헬기장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약 50분 후 갈곶산에 도착했습니다. 특별한 표지석이 있는 것은 아니고 누군가가 이정표 상단에 표기해 놓았군요!!! 예서 동쪽으로 진행하던 대간길이 북으로 90도 꺽어 진행합니다. 주변보다 높지 않아 그런지 정상이라는 어떠한 표지도 없이 마구령4.9km, 늦은목이1.0km 이정표만이 서 있습니다. 대간길은 좌측, 북쪽으로 고도를 낮추어 진행되고 우측, 남쪽능선으로 가면 봉황산을 거쳐 부석사로 이어집니다. 저 앞에 보이는 봉우리가 아마도 가야할 선달산인 듯 합니다.

늦은목이 갈곶산에서 하산한 지 약 20분 후 늦은목이에 도착합니다.

선달산 늦은목이에서 출발하여 약 1시간 후 선달산에 도착합니다. 오늘 산행 중에 가장 조망이 그럴 듯한 곳이군요!!!

선달산 정상 이미지 날씨가 흐려 주변 조망이 뚜�이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날씨가 좋으면 제법 볼만 할 것 같습니다. 아래 사진은 앞으로 가야할 옥돌봉 방면 모습입니다. ■ 선달산 선달산(1,236m)은 백두대간의 소백산과 태백산 사이에 솟아 있어 대간을 조망하기에 좋은 산이다. 정상에서는 동쪽으로 남대천과 어래산이 보이고 서쪽으로는 박달령이 보인다. 또한 남쪽의 갈곶산과 이어진 부드러운 구릉으로 산행하기 수월하다. 선달산 부근의 문화 유적으로는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18호)과 소수서원이 있다.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 건물로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 하였다. 소수서원은 1532년 주세붕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으로 창건 당시 백운동서원으로 불리다가 명종 때 풍기군수로 있던 이황의 건의로 소수서원이라 불렀다. 경상북도 봉화군은 사방이 산으로 첩첩이 둘러싸여 있고 그 속에 오전, 두내, 다덕 등 전국에서 손꼽히는 약수가 여러 군데 있다. 그 중 으뜸인 오전약수는 서쪽으로 마구령과 동쪽으로 도래기재 사이의 선달산(1,236m) 아래 있으며, 물맛이 가장 좋기 로 조선시대 최고의 약수로 뽑히기도 했다. 그리고 중종 때의 풍기 군수 주세붕은 오전약수를 마음의 병을 고치는 좋은 스승에 비길만하다고 극찬했다. 오전약수 전설에 의하면 오전리의 후평장과 춘양면의 서벽장을 드나드는 보부상이 주실령을 넘어 가던 어느날 쑥밭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약수를 일러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약수를 쑥밭약수터라고도 부른다. 또 옛날 이 근처에 살던 여인이 남자와 정을 통하기 위해 약수터를 찾았다. 그런데 그때까지 맑게 샘솟던 약수가 흙탕물로 변하고 뱀이 나타나 부정한 여인의 행위를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상 한국의 산천 홈피 펌]

1,246봉 선달산을 출발하여 약 20분 후 1,246봉에 오릅니다. 표지석이 없이 어느 산악회에서 표시를 이렇게 해 놓았습니다.

참나무 식별 안내판 박달령 가는 길에 만난 영주군에서 마련해 놓은 참나무 식별 안내판입니다. 아마도 이곳이 참나무 자생군락지이어서 그런 듯... 이렇게 많은 참나무 종이 있다는 것 처음 알았습니다. 나무로 만든 박달령을 가르키는 이정표가 눈바닦에 버려져 있습니다.

쉼터 참나무식별안내판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여 우측 숲 사이로 오전리 물야 저수지를 바라보며 이어지고 약 20분 후 박달령1.4km, 선달산3.6km 이정표가 있는 쉼터를 지나갑니다. 진행방향에서 이정표를 축으로 오른 쪽으로 돌아서 진행합니다. 아래 사진은 가야할 등산로의 모습입니다.

박달령 선달산을 출발해서 약 2시간 후 박달령에 도착합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조선조 성종이 전국 약수의 우열을 검사케한 결과 직접 맛을 본후 가장 좋은 약수로 인정했다고 전해지는 오전약수로 내려갈수 있다는 군요. 막걸리와 과매기 그리고 간단한 행동식으로 점심을 대신한 후 오랜 눈 산행으로 다리가 불편한 산우 몇분이 오전리로 탈출하고 나머지 일행만 옥돌봉으로 향합니다.

내성기맥분기점 옥돌봉에서 약 20분 후 내성기맥분기점에 도착합니다. 이어 약 1분 후 옥돌봉/박달령/주실령 삼거리에 도착합니다.

옥돌봉 내성기맥분기점에서 약 10분 더 진행하여 옥돌봉에 도착합니다. 박달령에서는 약 30분 정도가 소요되었군요!!! 장시간 이어진 긴 산행 그리고 쌓여 있는 눈을 거슬러 오르는 길이 아주 힘겹기만 합니다. 예서 도래기재까지는 2.68km. 어느 덧 오늘 산행의 종점이 눈 앞에 다가 왔군요!!!

550년 묵은 철쭉나무 옥돌봉에서 하산을 시작한 지 약 15분 후 영주군에서 보호수로 지정한 550년이라는 긴 세월을 살아온 철쭉나무를 만났습니다. 나무 주위에 작은 펜스를 만들어 놓았군요!!!

본래 이렇게 걸려 있어야 했던 것인데 ㅠㅠ 이렇게 나무에 걸려 있던 이정표였는데 아까 쉼터에서 눈 바닦에 내버려져 있던 이정표는 우찌 된 영문인가요??

도래기재 가는 길 관할 지자체에서 정비를 해 놓았습니다. 눈까지 쌓여 제법 미끄럽고 위험한 길인데 이렇게 살뜰하게도 가꾸워 놓았군요!!! 산림청 화이팅... But 국립공원관리공단은 ???

도래기재 옥돌봉에서 약 1시간 후 도래기재에 도착합니다. 산행들머리인 고치령에서는 11시간 40여분이 소요되었군요!!! 도상거리도 긴 편이지만 등산로에 눈이 많이 쌓여 있어 아주 힘든 산행이었습니다. 아직 버스가 도착하지 않아 다음구간 들머리인 맞은 편 계단부근에서 함께한 산우님들이 바람을 피하고 있군요!!!

산행후기를 마치며... 도상거리 약 26km의 긴 산행.. 하얀 눈이 등산로에 쌓여 있어 조금 더 힘들었던 산행을 마치니 피곤이 엄습합니다. 화방재에서 함백산을 거쳐 피재까지를 시작으로 인연을 맺은 대간길이 어느 덧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제 남은 구간이 9개 구간 남았군요!!! 어떤 구간은 세번씩도 가고 함께 또는 홀로 가기도 한 대간길... 무자년 올해에는 무사히 진부령까지 마무리하리라 다시 한번 다짐해 봅니다. ♣ 겨울 숲에서 ♣ - 글 안 도 현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 마음 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것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그때까지 내 할 일은 머리 끝까지 눈을 뒤집어쓰고 눈사람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