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원적산둘레길 이천의병전승비-범바위약수터-정개산산성유적-천덕봉-원적산-산수유마을 여행기록

♧ 트레킹일자 : 2025.04.01.(화)
♧ 트레킹코스 : 이천 넓고개-원적산 둘레길-천덕봉-원적산-백사 산수유마을 // 거리 약 17.0km, 트레킹 시간 약 5시간 55분(식사, 휴식시간 포함)
※ 여행세부일정
○ 09:13 ~ 09:21 : 경강선 신둔도예촌역
- 경기도 이천시 신둔면 수광리 699
※ 성남 미금역-(경강선)-신둔도예촌역
○ 09:41 ~ 09:47 : 이천의병전승비
- 넓고개 또는 넉고개
○ 09:51 : 동원대학교 삼거리
- 이천시 신둔면 남정리 산35
○ 10:10 : 범바위약수터
- 정개산 등산로 입구
- 좌 정개산 1.65km
○ 10:13 : 남정리 갈림길
- 우 남정리 0.58km
○ 10:22 : 남정리 갈림길
- 우 남정리 0.6km
- 이천시 신둔면 지석리 산353
○ 10:44 : 정개산산성유적
○ 10:51 : 정개산 등산로 입구
- 좌 정개산 1.93km
○ 11:08 : 지석리 마을회관 갈림길
- 우 지석리 마을회관 2.6km
○ 11:10 ~ 11:22 : 도암리 사거리
- 좌 정개산 2.9km 천덕봉 3.25km, 우 도암리경로당 2.6km
※ 좌측 천덕봉을 향해 산길 오르다 길을 못찾고 임도로 복귀
○ 11:33 ~ 11:38 : 도암리 삼거리
- 이천시 신둔면 도암리 산1
※ 천덕봉 오르려 좌측 포장도로로 올라갔으나 묘지군. 길 없어 다시 복귀
○ 11:59 : 천덕봉 삼거리
- 좌 천덕봉 3.5km, 원적산 4.4km
※ 좌측 천덕봉 산길로 진행
- 이천시 신둔면 장동리 산50
○ 12:43 ~ 12:49 : 능선 안부 삼거리
- 좌 정개산 2.9km, 우 천덕봉 2.1km
○ 13:15 : 475.4봉
○ 13:25 : 헬기장
○ 13:48 ~ 13:50 : 천덕봉(634.5m)
-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주록리 산96-21
- 여강길 11코스 동학의길 갈림길
○ 14:10 ~ 14:13 : 원적산(564m)
- 이천시 백사면 경사리 산46-1
○ 14:15 : 낙수재폭포/영원사 삼거리
- 직진 영원사 1.77km, 우 낙수재 폭포 1.04km, 산수유마을(도립리) 2.47km
※ 우측 낙수재폭포 방향 진행
○ 14:41 : 낙수재폭포
○ 14:45 : 영원사/산수유마을(도립리) 삼거리
- 좌 영원사 2.6km, 우 산수유마을(도립리) 0.94km
○ 14:50 : 할미바위
○ 15:03 : 이천백사산수유꽃축제장
○ 15:16 : 육괴정 도착 트레킹 종료
-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 731-1
○ 15:23 ~ 16:12 : 도립리 마을식당
- 축제기간 중 마을자치회 운영
○ 16:25 : 백사 산수유마을 주차장
○ 17:00 : 도립2리 버스정류장
- 이천시내버스
○ 17:13 ~ 17:35 : 경의중앙선 이천역
※ 경의중앙선 탑승 귀가
※ 관련 여행기록





오늘은 경기도 이천으로 향했습니다.
이천 원적산은 산수유꽃이 피는 이맘 때 즈음이면 많은 산객들이 찾는 곳인데 꾸준히 산을 찾았음에도 저와는 그 동안 인연이 없었습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기도 하고 또 마침 산수유축제도 한다고 하여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이천 원적산둘레길과 원적산 산행을 함께 하기로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아침 7시 20분 경 집을 나서 분당선 이매역에서 경강선을 타고 이천시 신둔면 수광리 신둔도예촌역에서 내렸습니다.
오늘 걸을 원적산둘레길 시점은 넓고개에 있는 '이천의병전승비' 입니다.
신둔도예촌역에서 화장실에 들러 행장을 정리한 후 넓고개로 이동하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네이버로 거리 검색을 해보니 버스 올 때를 기다리는 것보다 걸어 가는 것이 낳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이곳부터 트레킹을 시작했습니다.
네이버 길찾기 기능을 활용해서 방향을 정하고 도로를 걸어 넓고개로 향했습니다.







도로를 걸어 고개를 올라 갑니다.
첫번째 사진에 보이는 전봇대에 경기옛길 안내리본이 보입니다.
이곳이 경기옛길 봉화길이 지나가는 곳이네요.
신둔도예촌역에서 약 20분 걸어 넓고개 이천의병전승비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이천의병전승비 주변을 둘러 보았습니다.
두번째 사진에 보이는 저 의병모습은 학창 시절 역사책에서도 본 적이 있는 사진이지요.
구한말 외국인 선교사가 경기도 양평 일대에서 의병들을 만나 남긴 사진으로 알고 있습니다.
1896년 1월 17일 일본군이 이천으로 들어오자 김하락, 김태원, 구연영, 조성학, 신용희 등이 이천에서 일으킨 의병 2,000명이 이곳 넓고개에서 일본군을 전멸시켰는데 이것이 을미의병의 첫 전승이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사진에는 이곳 넓고개(광현, 넉고개)의 유래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1896의병둘레길' 안내판을 보니 오늘 걷는 이 길이 이천의병이 일본군과 치른 광현전투현장이기도 하네요.







첫번째 사진에 보이는 것이 넓고개 한켠에 자리하고 있는 경기옛길 봉화길 스탬프함 입니다.
봉화길을 걸을 때 언젠가는 또 이곳을 오겠네요.
넓고개를 출발해서 임도를 조금 오르자 다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동원대학교 갈림길이 있습니다.
이제 이천시 신둔면 수광리에서 남정리로 넘어 왔습니다.
좌측으로 약 10m 정도 올라가자 여섯번째 사진에 동원대학교가 보이고 마지막 사진에는 광역버스 회차장소가 보입니다.







이른 아침 호젓하게 임도길을 걷는데 네번째 사진에 보이듯이 길옆에 '정개산산성유적' 안내판이 보입니다.
막연히 원적산 둘레길이거니 했는데 램블러지도를 확인해보니 지금 걷는 임도길은 좌측에 있는 정개산(433.3m) 산허리를 걷고 있는 것입니다.
원적산둘레길은 정개산, 천덕봉 그리고 원적산 등 세개의 산허리에 개설된 임도길은 걷는 것이네요.
다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안내판은 이곳 신둔면의 주요 하천과 저수지를 소개하고 있네요.







두번째 사진에 보이는 안내판에서는 신둔면 소재 양각산과 정개산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천의병전승비를 출발해서 약 23분 지나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범바위약수터에 도착했습니다.
약수터 물줄기는 세차게 나오는데 옆에 이천시에서 붙여놓은 '음용부적합'이라 하네요.
이곳 범바위약수터는 정개산 등산로 입구라고 합니다.
이곳에서 좌측 산길을 올라 정개산까지는 1.65km, 원적산 천덕봉까지는 6.07km라 합니다.
오늘 원적산둘레길을 걷다가 원적산 정상을 다녀 올려고 마음 먹고 왔지만 이곳보다는 조금 더 둘레길을 걷다 산길을 올라 원적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올라 타기로 하고 계속 임도를 걸었습니다.







첫번째 사진에 '신둔도자기의 유래' 안내판이 보입니다.
오늘 트레킹도 '신둔도예촌역'에서 시작했는데 이천 도자기의 본산이 이곳 신둔면이었군요.
길을 걸으면서 참 많은 것을 새롭게 배웁니다.
범바위약수터를 뒤로하고 임도를 걸어 세번째 사진에 보이는 남정리 갈림길을 지났습니다.
우측으로 580m 내려가면 남정리라 합니다.
다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안내판은 소정리와 낭정골 마을 유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6세기 초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천 지역 특산품으로 도자기가 소개됐다. 이천 지역에서 출토된 삼국시대 토기 조각들은 천년의 도자기 역사를 증명한다. ‘사기막골’, ‘점말’ 등의 지명도 이천 도자기 마을의 옛 모습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16세기 후반 이천 도자기 생산은 오히려 위축됐다. 경기도 광주에 왕실용 도자기를 구워내기 위한 관요가 생기면서부터다. 이천 지역 도공들이 관요로 차출됐기 때문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이천 도자기가 명성을 되찾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가 지나서다. 해방 이후 신둔면 수광리 일대에는 두 곳의 칠기 가마가 남아 있었다. 전쟁으로 파괴된 도자기 문화재를 모으고 도예기술을 되살리자는 움직임이 계속됐지만 늘 재정적인 어려움이 뒤따랐다. 그러다가 1965년 한일협정 이후 일본인의 한국 방문이 자유로워졌고, 전통 도자기에 대한 수요도 급격히 증가했다. 1970년대 이전 3개에 불과하던 가마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기점으로 100여개로 늘어났다.[출처 : 경향신문]







첫번째 남정리 갈림길에서 다시 약 19분 지나 네번째 사진에 보이는 두번째 남정리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났습니다.
다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안내판에서는 이천 도자기마을 신둔면을 소개하고 있네요.







세번째 사진에 보이는 안내판은 정개산 산신제를 소개하고 있는데 내용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곳 정개산이 위치하고 있는 지석리 마을에서 격년제로 음력 이월 초하룻날에 산신제를 지내고 있다 합니다.
산신제의 가장 큰 제물은 보통 3살 내외의 수소를 고르는데 잘 생긴 수소를 고른다 합니다.
정개산의 산신이 과부인 암호랑이이기 때문에 산신에게 올리는 제물도 젊고 잘 생긴 수소를 바쳐야 한답니다.
지석리 주민들은 한국전쟁 당시에도 마을이 큰 피해를 입지 않았고 전사자가 한명도 없었던 것이 산신의 도움이라 믿고 있다네요.
이어 마지막 두장의 사진에 보이는 정개산산성유적에 도착했습니다.







정개산 산성유적은 안내판만 있지 흔적을 육안으로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안내문을 보니 정개산 정상 남쪽에 위치한 포곡식 산성으로 13세기~14세기 고려시대 피난성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세번째 사진에 보이듯이 길가에 신덕현님의 '비와 당신' 시화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임도를 걸어 여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정개산 갈림길을 만났습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산길을 4.1km 정도 가면 천덕봉입니다.
잠시 이곳에서 임도를 등지고 능선으로 올라갈까 고민하다 조금 더 임도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임도길을 걸어 마지막 세장의 사진에 보이는 도암리 사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도암리경로당이고 좌측으로 산길을 오르면 천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올라갈 수 있다고 이정표에 표시되어 있습니다.
잠시 램블러지도를 보면서 고민하다 이곳에서 천덕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으로 오르기로 하고 좌측 산길로 향했습니다.








첫번째와 두번째 사진에 보이듯이 초입에는 비교적 산길이 뚜렷하더니 조금 더 오르자 쌓여있는 낙엽 때문인지 길이 없어졌습니다.
세번째 사진에 보이는 곳 이후로는 전혀 길이 보이지 않네요.
이곳 저곳을 미끄러운 낙엽을 밟으며 헤매다 결국 다시 임도로 내려와 임도길을 걸어 갔습니다.







다시 삼거리를 만났습니다.
좌측으로 잘 포장된 도로가 나 있습니다.
램블러지도를 확인해보니 이곳에서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표시되어 있지 않은데 육안으로 보기에 능선까지 거리가 가까워 보여 포장도로를 걸어 올라 갔습니다.








이곳도 아니었습니다.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올라 갔더니 잘 단장된 유명한 집안 묘지네요.
묘지 넘어서는 전혀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이 없습니다.
다시 내려와 다시 임도길을 걸어 산수유마을로 향했습니다.
이렇게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원적산둘레길 끝까지 가서 원적산을 올라갔다 내려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첫번째 사진에 보이는 좌측 원적산 능선으로 올라가는 갈림길을 또 만났습니다.
이곳은 램블러지도를 보니 선명하게 능선으로 길이 이어진 것이 보입니다.
이곳에서 천덕봉까지 약 3.5km입니다.
길은 앞서 갈림길에서와 달리 육안으로 봐도 산객들이 많이 다니는 등산로입니다.
능선안부에 도착해서 천덕봉을 거쳐 원적산으로 가서 산수유마을로 하산할 예정입니다.








임도 천덕봉 삼거리에서 산길을 올라 약 44분 후 마지막 세장의 사진에 보이는 능선안부에 올랐습니다.
이곳이 좌측 정개산에서 우측 천덕봉과 원적산으로 이어지는 앵자지맥 능선입니다.
이곳에서 좌측 2.92km 거리에 정개산이 있고 천덕봉은 우측으로 2.1km 거리에 있네요.
가파른 산길을 치고 올라 오느라 힘들었습니다.
잠시 안부 의자에 걸터 앉아 쉬었다 출발했습니다.
숲 간벌작업이 있었나?
여기저기 베어져 쓰러져 있는 나무들로 산길 주변이 어지럽습니다.








워낙 등산로 주변이 어지러워 왜 이럴까 궁금했는데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경고문을 읽어보니 조금은 이해가 되네요.
이곳 우측이 군 박격포, 기관총 사격훈련장이네요.
아무래도 유탄으로 인한 산불방지 때문에 나무를 베어내는 것 아닐까요?
일종의 산불이 나더라도 확산방지를 위해 인위적으로 정리하는 것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만선리 갈림길 안부를 지나 계속 능선길을 걸었습니다.







두번째 사진에 보이는 봉우리에 올랐더니 어느 선답자 분이 475.4봉이라 표지를 남겨 놓으셨네요.
475.4봉을 지나 다시 군사격장 경고문을 만나고 난 후 멀리 천덕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눈앞에 펼쳐지는 헬기장에 올랐습니다.








천덕봉에 올랐습니다.
정상부가 너른 헬기장으로 상당히 넓은 편입니다.
높이가 634.5m로 오히려 높이가 564m인 원적산 보다 더 높은 봉우리입니다.
잠시 천덕봉 정상에서 쉬었다가 원적산을 향해 이동했습니다.
경기도 광주시의 동남부 실촌읍 이선리의 동쪽에 위치한 산이다(고도:634m). 여주군 금사면과 이천시 신둔면 · 백사면과의 경계에 있다. 원적산(員寂山)의 주봉이다.
『해동지도』에 원적산(元積山)으로, 『1872년지방지도』에는 원적산(元寂山)으로 표현되어 있다. 『중정남한지』에 "원적산(圓寂山)은 실촌면에 있으며, 일명 원적산(元寂山)이다. 여주 · 이천과의 경계이며 주맥은 양지의 문수산이다. 세간에서 광교산 · 수리산 · 무갑산 · 원적산을 광주에 있는 4대 명산이라 일컫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같은 문헌에 "원적산 위에 공민봉(恭愍峰)이 있다. 속설에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 산으로 왔는데, 집과 담의 남은 터가 지금도 뚜렷해서 공민봉이라 칭했다 한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대동여지도』에는 정개산 서쪽 줄기에 원적산(員寂山)이 표현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 광주군 실촌면 산곡명에 천덕봉이 사동에 소재한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출처 : 한국지명유래집]







위 한국지명유래집 글에 따르면 이곳 천덕봉이 원적산이라 하는데 왜?
일부 지도에서는 원적산을 원적봉이라 표기하고 있기는 합니다.
천덕봉에서 원적산으로 가는 능선길에 여강길 안내문이 있네요?
이곳이 여강길 11코스 동학의 길 갈림길 이네요.
시간 나는대로 여강길을 걷고 있어 언젠가는 이곳에 또 오겠네요.








두번째 사진에 보이듯이 천덕봉에서 정개산으로 이어지는 앵자지맥의 장쾌한 산줄기가 한눈에 들어 옵니다.
지도를 보면 뾰족하게 솟은 봉우리가 지도에 495봉으로 표기된 봉우리로 보이고 그 뒤에 흐리게 보이는 봉우리가 정개산인 듯 하네요.
네번째와 다섯번째 사진에는 지나온 천덕봉이 보입니다.
천덕봉을 지나면서 왜 능선에는 나무가 없을까 생각해 보았는데, 아마도 군 사격장이 위치하고 있어 이곳 능선에 나무를 다 베어버려서 마치 초지대인 듯한 모습을 가지게 된 것 아닌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종의 방화선 역활을 할 것 같습니다.
드디어 원적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원적산둘레길을 걷다 임도에서 산길로 들어서서 약 2시간 9분 지나 원적산에 도착했네요.







원적산 정상에서 조망을 보며 잠시 머물렀다 이제 하산합니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자 바로 삼거리를 만났습니다.
직진해서 계속 내려가면 송말1리, 영원사 방향이고 우측으로 진행하면 산수유마을 방향입니다.
일단 우측 산수유마을로 향했습니다.







하산로 주변에 개나리가 만개했습니다.
산수유 보러 가는 길에 봄꽃을 만나니 반갑습니다.
잠시 발길을 멈추고 놀다 갑니다.








이번에는 산수유?
산수유꽃인 듯 합니다.
이 계절에 최고의 선물 맞습니다.
다섯번째 사진에 보이듯이 이곳에서 이육사 시인의 청포도 시를 만나네요.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곳이 낙수재폭포인데 쓰러진 나무로 인해 주변이 엉망입니다.
원적산 정상에서 약 28분 내려와서 낙수재폭포에 도착했습니다.








낙수재폭포 이후에 길은 평탄한 도로입니다.
원적산에서 약 30분이면 내려 오네요.
두번째 사진에 보이듯이 산수유나무를 닮은 백사산수유둘레길 이정표가 눈에 확 띄네요.
여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영원사 갈림길을 만나 우측으로 걸었습니다.
하지만 산수유축제장을 거쳐 산수유마을로 내려가려면 이곳에서 영원사 방향으로 좌즉 도로를 걷는 것이 더 낳았습니다.








산수유 나무가 있는 도로를 걸어 나와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할미바위를 만났습니다.
옛날 가난한 할머니와 효심 가득한 손자가 살았는데 손자는 추운 겨울 나무하러 깊은 산골로 들어 갔는데 산수유꽃이 피도록 돌아오지 않았답니다.
할머니는 길가에서 손자를 하염없이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 합니다.







산수유축제장에 도착했습니다.
이곳 이천 백사면 산수유축제는 2025.03.28.부터 30일까지 열렸으니 축제는 끝이 났습니다.
그래도 평일인데도 탐방객들이 많이 보입니다.








산수유축제장으로 들어 왔습니다.
2023년 3월 구례 사성암과 오산 산행을 마치고 구례 산수유마을에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구례 산수유축제장 보다 규모는 비교할 바는 아니지만 산수유꽃이 활짝 피었네요.
산수유 하면 대개 구례 산동마을을 떠올리지만 서울에서 가까운 이천에도 봄이면 온 마을이 노란 산수유로 뒤덮인다.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 송말리, 경사리 일대를 아우르는 산수유나무는 줄잡아 1만 그루 정도다. 그중에서도 도립리마을은 산수유나무 수천 그루가 밀집해 있어 이천 산수유마을을 대표한다.
원적산(563m)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도립리마을은 수령 100년이 넘는 산수유와 500년 된 느티나무 고목이 어우러져 있다.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1519년)를 피해 낙향한 선비 엄용순을 비롯한 6명의 선비가 이곳에 육괴정(六槐亭)이라는 정자를 짓고 주위에 느티나무와 산수유나무를 심은 것이 산수유마을의 시초다. 육괴정이란 이름도 여섯 선비가 우의를 기리는 뜻에서 정자 앞에 작은 연못을 파고 각각 느티나무 한 그루씩을 심은 것에서 유래했다.[출처 : 대한민국 대표 꽃길]








산수유축제장을 내려와 백사면 도립리 산수유마을로 들어 왔습니다.
다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도립리 육괴정에서 오늘 트레킹을 마무리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게시글을 보니 이곳 육괴정은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로 조광조(趙光祖)를 중심으로 이상정치를 추구하던 신진사류들이 크게 몰락하게 되자, 난을 피하여 도립리로 낙향한 엄용순이 건립하였다고 합니다.
당시의 명현인 김안국(金安國)을 비롯하여 강은(姜濦)·오경(吳慶)·성두문(成斗文)·임내신(任鼐臣) 등 다섯 선비들도 함께 낙향하여 이 정자에 모여 시를 짓고 학문을 논하였는데, 이들을 가리켜 괴정육현(槐亭六賢)이라 하였다고 하네요.







긴 시간 산길을 걸었고 이미 오후 3시가 넘어 허기가 져서 몸에서 당 떨어진 신호를 계속 보내네요.
겨우 마을자치회가 축제기간 중에만 여는 식당을 찾아 김치전과 쇠주 1병으로 허기를 달래고 귀가길에 올랐습니다.
네번째와 다섯번째 사진에 산수유마을 입구 주차장이 보입니다.







산수유마을에서 식사를 하면서 집으로 가는 길을 검색해보니 상당히 험난합니다.
산수유마을 도립1리 마을회관에서 이천역까지 가는 버스가 1대 있는데 오후 3시 버스는 이미 출발했고 다음 버스는 오후 6시에 있습니다.
인근 경사1리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결론은 비교적 운행버스가 많은 도립2리 대로변 버스정류장까지 걸어 가는 방법 밖에 없네요.
두번째와 세번째 사진에 보이는 곳이 도립2리 마을회관인데 이곳에서도 버스가 1대 있지만 역시 옷두 6시에 출발합니다.
산수유마을에서 식사를 마치고 네이버 길찾기 기능에 의지해서 약 48분을 걸어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백사면 도립2리 대로변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 이천역이 종점인 버스를 타고 이천역에 도착해서 경강선 전철을 타고 성남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 트레킹을 마치고..[ 도자기의 고장 이천 ]☜

당초에는 원적산둘레길을 걷고 산수유마을에서 원적산 정상까지 다녀올려고 했던 것이 원적산둘레길을 걷다 보니 생각이 바뀌어 천덕봉과 원적산을 거쳐 산수유마을로 내려 왔습니다.
트레킹이 끝나고 나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덕봉과 원적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본 장쾌한 조망은 정말 멋졌습니다.
겨울에 흰눈이 쌓였을 때를 상상하니 더더욱 그렇습니다.
♧ 낙화 ♧
- 글 이형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걱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 분 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 원적산둘레길 시화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