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랑길 51코스 김제 동진강석천휴게소-알콩쌀콩들녘-남포들녘정보화마을-봉화산-심포항 여행기록
♧ 트레킹일자 : 2024.01.21. (일)
♧ 트레킹코스 : 동진강석천휴게소-알콩쌀콩들녘-봉화산-심포항 / 이상 거리 약 23.6km, 트레킹 시간 약 5시간 41분(식사, 휴식시간 포함)
※ 여행세부일정
○ 06:39 : 동진강석천휴게소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 577-26
○ 06:58 : 서포2배수문
○ 07:14 : 불당 버스정류장
○ 07:25 : 서포리 배수갑문
- 김제시 죽산면 대창리 459-3
○ 07:46 : 죽산리 해창갑문, 공도교
-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 933-1
○ 07:49 : 해창마을, 해창 버스정류장
○ 08:12 : 대장양수장
-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 1028
○ 08:24 : 수교버스정류장, 새만금농산
- 김제시 죽산면 종신리 424-3
○ 08:25 : 수교다리
- 김제시 성덕면 남포리 14-3
○ 08:52 : 김제성덕우체국
○ 08:56 : 성덕남포리
- 김제남포들녘정보화마을
○ 09:12 : 학당 버스정류장
- 김제시 광활면 은파리 1647-1
○ 09:13 : 양수장
○ 09:48 : 군평저수지 배수갑문
- 김제시 군평
○ 10:03 : 진흥경로당
- 김제시 광활면 광활7길 135-12
○ 10:18 : 옥포마을
- 김제시 광활면 옥포리 924-24
○ 10:36 : 양수장
- 김제시 광활면 창제리 1063-19
○ 10:59 : 창제교
- 김제시 광활면 창제리 1063-37
○ 11:30 : 거전종점 버스정류장
-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1467-4
○ 11:35 : 봉화산 등산로입구
○ 11:54 : 봉화산 정상, 봉수대
○ 12:07 : 당산나무쉼터
○ 12:11 : 안하삼거리, 안하 버스정류장
○ 12:20 : 심포항 도착 트레킹 종료
-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1502
※ 관련 여행기록
- 서해랑길 50코스 부안 부안군청-석정문학관-고마제 둘레길-고마지구농촌테마공원-장등마을-동진강석천휴게소 여행기록 : https://jungwa686.tistory.com/m/15974028
동진대교를 건너 동진강석천휴게소에서 서해랑길 50코스를 마감한 후 조금 쉬었다가 서해랑길 51코스 트레킹을 시작했습니다.
서해랑길 51코스는 동진강 석천휴게소부터 심포항까지 두루누비 공지거리 23.4km인 코스로 너른 김제평야를 가로질러 심포항으로 나가는 그런 코스입니다.
새벽 3시 40분경 부안군청에서 서해랑길 50코스 트레킹을 시작해서 동진강석천휴게소에서 끝내고 다시 서해랑길 51코스 트레킹을 시작한 시간이 6시 40분인데 날이 밝아올 기미가 안 보입니다.
좌측에는 동진강, 우측에는 너른 들을 두고 강변도로를 걸어 갑니다.
다섯번째 사진과 마지막 사진이 도로 위에서 본 동진강과 강건너 부안군 방면 모습입니다.
여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건물이 '알콩쌀콩들녘체험관'인데 어둠속에서 그냥 지나쳤습니다.
"쌀과 콩의 전국 최대 주산지인 동진강 권역에서 알찬 콩과 쌀이 나온다는 의미를 뜻하는 알콩쌀콩 등대마을은 쌀과 콩이 튀어나오는 듯한 모습으로 생동감 넘치는 마을 모습과 동진강이 흐르는 희망 등대가 표현된 것으로 주요 조성 시설은 각종 워크숍과 교육, 체험학습의 장소로 활용될 교육장과 회의실을 갖춘 알콩쌀콩교류센터, 새만금전망카페, 휴게공간을 갖춘 들녘체험관, 논콩선별 및 저장창고, 체험객의 숙박과 체육 활동, 야외 문화행사의 장으로 활용될 어울림 마당 등이며, 동진강 권역의 정성이 담긴 농산물 쇼핑몰 홈페이지(www.ssalkong.co.kr)도 구축했다."[출처 : 전북도민일보]
동진강석천휴게소를 출발해서 약 19분 후 첫번째 사진에 보이는 서포2배수문을 지났습니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옴을 느낄 수 있네요.
여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섬뜩한 경고문..
이곳이 새만금간척사업으로 생긴 땅이라는 것을 경고문에서 알려주고 있네요.
이어 작은 마을을 지나는데 이곳이 불당마을입니다.
서포2배수문을 지나 약 16분 후 불당 버스정류장을 지났습니다.
이곳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 불당마을에는 서해랑길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삼불암이 있는데 아마도 그로인해 마을이름이 불당마을이 된 듯 합니다.
이어 다시 약 11분 후 여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배수문을 지났습니다.
이 배수문을 꼭지점으로 해서 서해랑길은 우측으로 휘어져 진행합니다.
잠시 이곳에서 배낭을 벗어 놓고 아침식사를 하고 출발했습니다.
"오래전부터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 불당마을에는 석불상이 있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이 고기를 잡으러 나갈 때 항상 이 석불상에 공양을 드리고 나가는 것이 하나의 풍습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해일이 일어 이 불상이 어디론가 묻혀버렸다. 그 후 어느 해 방목리에 사는 정진섭(鄭進燮)이라는 사람이 술에 취한 채 마을 앞 연못가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부처님이 나타나 말하기를 “연못의 물을 퍼내면 3위의 불상이 나올 것이니 연못 남쪽에 있는 빈터에 불당을 세우고 이를 안치하라. 그러면 소원 성취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꿈이 연 이틀간이나 나타나자 마침 아들이 없던 정진섭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그 연못의 물을 퍼냈다. 그러자 과연 3위의 불상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불당을 짓고 3위의 불상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이 있어서인지 지금도 아기 낳기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삼불암을 많이 찾고 있으며, 해마다 삼월 삼짇날 동진강 하구에서 지내는 수륙재(水陸齋)도 이곳에서 준비한다고 한다. 지금 있는 불당 건물은 1959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삼불암에는 불당과 요사, 종각, 석탑, 동자상, 중창비, 천마상 등이 있다. 삼불암에 안치되어 있는 3위의 석불은 조각하여 만든 것이 아니라 긴 자연석 대석 위에 불상 형태의 돌을 올려놓은 것이다. 삼불암은 동진강 하구 북쪽 김제시 죽산면 서포리 불당마을의 동편 끝에 위치해 있다." [출처 : 향토문화전자대전]
좌측에 하천을 두고 농로를 걸었습니다.
도로명은 대창로이고 좌측 하천 이름은 원평천입니다.
이어 다섯번째와 여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해창갑문을 만나고 공도교 다리를 건넜습니다.
마지막 사진이 공도교 위에서 바라본 원평천 모습입니다.
공도교를 지나면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입니다.
즉, 김제시 죽산면 대창리에서 죽산리로 넘어온 것입니다.
"원평천은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산에서 발원하여 봉남면을 거쳐 동진강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원평천(院坪川)은 김제시 금산면 화율리에서 지방2급 하천으로 시작된 뒤 금구천이 합류하는 봉남면에서 국가 하천으로 바뀌고 죽산면에서 동진강에 합류하여 서해로 흘러든다.
예전에는 우리나라 도작문화의 발상지였던 김제시 부량면 벽골제[사적 제111호]의 수원(水源)으로 이용되었다. 원평천과 동진강 사이에 형성된 충적평야가 벽골제 좌우에 걸쳐 있다.
원평천은 남쪽의 상두산과 동쪽의 모악산으로 연결되는 산등성이를 분수계로 유역이 형성되어 있다. 중류부와 하류부에서는 경사가 다소 완만하여 농경지 하천의 형태를 보이나, 상류부에서는 산지와 접하는 급경사의 전형적인 산지 하천을 형성하고 있다."
[출처 : 향토문화전자대전]
해창마을입니다.
동진강석천휴게소를 출발해서 이곳까지 약 1시간 10분이 소요되었습니다.
마을을 지나서 너른 들녘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걸었습니다.
이곳 역시 지금은 전형적인 농촌마을 모습이지만 새만금간척사업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해창(海倉)이란 지명은 해상 교통이 편리한 이곳에 나라에서 세운 창고가 있었던 데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해창은 원평천(院坪川)이 서해와 만나는 하구에 발달한 포구 마을이었다. 김제시 죽산면 죽산리에 있는 명량산(鳴良山)[300m]에서 뻗어 나온 구릉이 서해와 만나 멈춘 지점에 마을이 자리 잡고 있어 예로부터 해산물과 육산물의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조선 말기 세금으로 거두어들인 쌀을 보관하던 창고가 있었다고 하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1927년 대창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동진농지개량조합에서 설치한 방수문이 바닷물과 육지를 가로막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진봉반도 주변 만경강(萬頃江) 하구의 심포·화포, 신평천 하구의 옥포, 원평천 하구의 해창 등이 중요한 항구였으나 일제강점기 진봉반도 일대가 모두 간척된 뒤로 해창을 비롯한 포구 마을 주민 대부분이 논농사로 생업을 이어 가고 있다. 밀물 때에는 지금도 어선들이 드나드는 포구로 해산물을 사고파는 어시장이 형성되기도 하지만 새만금 간척사업이 예정대로 모두 완공되면 포구로서의 기능은 잃어버릴 것으로 보인다."[출처 :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해창 버스정류장을 지나 너른 농로를 걸어 약 23분 후 대장양수장을 지났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도로 좌측은 김제시 죽산면 대창리이고 우측은 죽산리입니다.
양수장이 도로에서 좌측으로 있어서 대장양수장이라 명명한 듯 합니다.
왜냐하면 좌측이 김제시 죽산면 대창리 대장마을이거든요.
"대창리는 본래 김제군 서포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화동리와 대장리, 창리의 일부와 반산면의 화교리 일부를 합하여 대장과 창리의 첫 자를 따 대창리가 되었다.
남쪽으로 명량산이 바라보이는 대창리에는 행정구역 통폐합 때 근처 마을 중에서 제일 크다는 뜻의 대장마을을 비롯하여 장돌,우마,화동,해창등 5개 마을이 있다.
장돌은 대장 서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서쪽 약3km지점 갯벌속에 800~900평 정도의 돌산이 있어 장돌이라 불렀다 한다."[출처 : 김제시, www.gimje.go.kr]
그렇게 너른 들녘을 보며 걸어 새만금농산 친환경농산물 저온저장고를 지나서 수교 버스정류장과 수교 다리를 건넜습니다.
김제시 죽산면 종신리에서 수교 다리를 건너 성덕면 남포리로 넘어 왔습니다.
수교 아래 흐르고 있는 하천이 신평천이라고 합니다.
수교 아래에 흐르던 신평천의 물을 끌어 흐르게 만들어 놓은 수로를 우측에 두고 농로를 걸어 남포마을로 들어 갑니다.
관개시설이 아주 잘 되어 있네요.
세번째 사진에 보이는 것이 폐건물인데 가옥은 아닌 것 같은데 아주 흉물스럽게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성덕우체국을 지나 남포마을로 들어 왔습니다.
서해랑길은 다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남포들녘정보화마을' 건물 가기 전에 좌측 골목길로 들어가 마을 안을 돌아 다시 도로로 나오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여섯번째와 마지막 사진이 마을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모습.
남포마을 안으로 들어가 한바퀴 돌아 다시 도로로 나왔습니다.
학당 버스정류장과 은파리 양수장을 만났습니다.
이곳은 김제시 광활면 은파리로 이제 성덕면에서 광활면으로 들어 왔습니다.
트레킹을 준비하면서 어느 선답자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은파리로 들어서면 아주 큰 비닐하우스 단지를 만난다고 하더군요.
너른 들녘에 자리한 비닐하우스들이 보입니다.
세번째 사진에 보이는 너른 들녘을 배경으로 버려져 있는 폐가옥과 폐건물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광활면 은파리의 너른 들녘의 모습과 비닐하우스 단지 모습입니다.
이렇게 넓은 비닐하우스 단지를 본적이 있나? 기억이 없네요.
아래 신문기사를 보니 겨울철에는 저 비닐하우스에서 감자농사를 짓고 있나 봅니다.
여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것은 군평저수지 배수갑문입니다.
램블러지도를 보면 서해랑길 우측으로 너른 들녘에 군평저수지가 있습니다.
"김제평야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산미증식계획에 의해 10km에 걸쳐 우리 농민의 피땀으로 제방을 쌓아 농경지를 확보한 곳이다. 간척사업과 소작을 한 당시 농민들은 어려운 환경 속에 가혹한 소작료를 내면서 농사를 지었다. 특히 김제시 광활면은 산이라 부를 만한 곳이 한 군데도 없는 드넓은 평야지대를 이루고 있다.
김제평야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지평선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광활면은 갯벌을 막아 논을 만든 간척지로 사방이 온통 황금벌판이다. 이미 수확을 마친 조생종 벼가 자란 자리에는 감자농사를 위한 손길이 분주하다. 땅을 놀리지 않고 2모작을 하는 것이다.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감자 파종을 하고 내년 모내기 전에 봄 감자를 출하한다.
호남평야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여름엔 벼농사를, 겨울에서 봄에는 감자나 보리등 이모작을 하고 있다. 광활면을 비롯해 김제평야의 감자는 전국 봄 감자 생산량의 30~40%를 차지한다. 감자농사를 위한 비닐하우스를 만들기 위해 철근 뼈대가 가지런히 누워있다.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은 일제 강점기인 1923년 동진농업주식회사가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지역에 3년간 방조제를 건설하면서 말 그대로 광활한 농지가 형성되었다. 이곳 광활면은 김제시 중심지에서 약 15㎞ 거리에 위치하고 거북이 형상을 하고 있다. 동쪽의 김제시 성덕면, 북쪽의 김제시 진봉면과 경계를 이루면서 남서쪽으로는 동진강으로 비롯되는 서해와 인접한 간척지로서 경사가 거의 없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평야지대이다."[출처 : 쿠키뉴스]
비닐하우스 1개동의 끝이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큰 비닐하우스입니다.
군평저수지 배수갑문에서 약 15분 후 진흥경로당을 지났습니다.
진흥경로당에서 약 15분 후 광활면 옥포리로 들어 왔습니다.
네번째 사진에 보이는 버려진 건물이 아주 신경이 쓰였습니다.
유난히 이번 서해랑길 51코스 트레킹 길에는 버려진 채 방치되어 있는 폐가 또는 폐건물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아래 3장의 사진이 광활면 옥포리 모습인데 특히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농수로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우측에 농수로를 두고 농로를 걸어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양수장을 만났습니다.
이 양수장을 경계로 김제시 광활면 창제리로 들어 갑니다.
여섯번째 사진에 보이듯이 농수로가 상당히 큽니다.
창제리 너른 들을 지났습니다.
사진에 보이듯이 관개용 농수로가 상당히 큽니다.
옥포리와 창제리 경계에 있던 양수장에서 창제리로 들어와 약 23분 지나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창제교 다리에 도착했습니다.
창제리 너른 들을 걷다가 두번째 사진에 보이는 수로다리를 건너 수로를 건넜습니다.
다리 건너기 직전에 서해랑길 이정표가 있는데 오늘 트레킹의 종점인 심포항이 5km 남았네요.
지금까지 걸어온 성덕면 남포리부터 광활면 창제리까지 너른 들녘을 '광활들'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광활들은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광활면 일대 갯벌의 대규모 간척 공사에 전국의 수많은 인부들이 동원되었다. 그들의 노력으로 해안 지형은 ‘개땅’으로 바뀌었고, 수평선은 지평선으로 변경되었다.
그리고 간척민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개척한 그 개땅에 소작인으로 눌러앉아 살면서 일본인들의 착취 대상으로 전락하였다. 그들은 인고의 삶을 살아야 했던 자신들을 가리켜 ‘개땅쇠’라 불렀다.
광활들은 김제평야와 만경평야의 중심부로서 한국에서 가장 넓은 시야로 들판을 열어준다. 김제시 광활면 전체가 산이 없는 들판으로 이루어져 있어 우리나라에서는 가을이면 유일하게 지평선으로 이어지는 황금벌판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서해안고속국도를 타고 김제 지역을 지날 때면 바둑판 모양으로 농지 정리가 되어 있는 끝없는 광활들의 모습을 조망할 수 있다. 김제시 성덕면 남포리에서 광활면 창제리까지 논과 논 사이를 가로지르는 15㎞의 논둑길은 자동차로는 2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이다. 지방도 702호선이 동서 방향으로 광활들을 관통하고 있다."[출처 : 향토문화전자대전]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창제리를 지나서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는데 이곳은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입니다.
드디어 광활들이 끝이나고 심포항 근처 해변 가까이 왔습니다.
심포리에 들어시자 버스정류장이 보이는데 이곳이 거전종점 버스정류장입니다.
네번째 사진은 '새만금바람길' 안내도입니다.
버스종점 회차지를 벗어나 여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거전포장마차라는 식당을 지나자 봉화산 등산로 입구가 나오고 서해랑길은 봉화산으로 향합니다.
사실 서해랑길 51코스는 이곳 거전종점 버스정류장까지는 고도차가 전혀 없는 평지길을 걸었고 봉화산을 오를 때만 조금 고도를 높히는 코스입니다.
봉화산 초입은 거이 묘지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조금 올라 완만한 능선에 오르자 비로소 숲길이 나타나네요.
봉화산 등산로입구에서 약 19분 후 봉화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곳 정상에 과거 봉수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봉수대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하고 실제 세번째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문화재 조사구역 출입제한' 표지가 있습니다.
봉수대는 고려시대 때 설치되었다가 조선시대 때에는 계화도로 옮겼다고 합니다.
봉화산 정상에서 직진해서 능선길을 걸어 하산했습니다.
도중에 갈림길이 나와도 아랑곳하지 않고 직진해서 내려오면 마지막 두장의 사진에 보이는 당산나무쉼터에 도착합니다.
봉화산 정상에서 당산나무싐터까지는 약 13분 걸렸습니다.
이곳에서 이정표는 좌측으로 내려가면 심포항, 우측으로 내려가면 새만금바람길이라 표기되어 있는데 서해랑길도 우측 새만금바람길 방향으로 진행합니다.
당산나무쉼터에서 우측 길따라 내려와서 마을을 지나 안하삼거리에서 심포항 방향으로 도로따라 걸었습니다.
지금 이곳은 도로 공사 중이네요.
공사현장을 지나 심포항 서해랑길 52코스 안내판에 도착해서 트레킹을 마무리했습니다.
트레킹을 마무리하고 심포항 도로를 따라 내려가서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한 후 마침 문을 연 카페에 들러 커피도 한잔 마시고 안내산악회 버스를 타고 귀가길에 올랐습니다.
두번째 사진이 심포항 차박 캠핑장 모습입니다.
"만경강과 동진강이 서해와 만나는 지점에 조성된 포구다.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자리하고 있다. 예전에는 그 규모가 꽤 컸던 포구였으나 현재는 새만금간척지조성사업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심포항은 조개의 집산지였다. 이 일대 갯벌에서 잡은 조개들이 이곳에 모여 전국 각지로 팔려나갔다. 조개구이집도 포구 주변에 즐비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옛말이 되고 말았다. 새만금방조제 공사가 끝나면서 이곳은 사실 바다로서의 운명을 다했다.
새만금방조제로 갇힌 거대한 호수로 변했기 때문이다. 어민들의 치열한 생존공간이었던 갯벌은 요즘 체험학습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근처에 망해사가 있는데, 해거름녘 풍경이 일품이다."[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 트레킹을 마치고...[ 은파리 비닐하우스 단지 ]☜
서해랑길 51코스는 거이 트레킹 종점에 이르러 봉화산을 오를 때까지는 거이 고도차가 없는 김제평야를 가로질러 걷는 코스라 거리는 약 20km가 넘지만 평이한 코스였습니다.
비록 어둠속에서 알콩쌀콩들녘체험관은 그냥 지나쳐 버렸지만 너른 김제평야의 들녘의 모습을 보면서 광활들에서 일몰을 마주하면 아주 멋진 그림을 만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 눈 꽃 ♧
- 글 박태강
천지가 눈꽃
가는이 오는이 탄성이 절로
삭막한 도회에 하얀꽃 피어
가는이 오는이 넋을 잃어
가는 걸음 멈추고 보고 또 보고
오는 걸음 멈추고 보고 또 보네
흰나무 눈꽃에 눈 못떼고
아이도 강아지도 깡충 깡충
보이는것 모두가 하얀 눈꽃
저 아름다운 꽃이 오래 오래
세상 모든것 너가 다 덮어
은천지 만들어
산에 눈꽃
들에 눈꽃
고요한 내가슴에
하이얀 눈꽃이 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