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 : 2007. 3. 3.(토)
■ 산행코스
당포 2리 마을회관 - 두번째 다리 건너기 직전 성주사 이정표 - 안동 권씨 사당 앞을 지나서 50m 정도 가면 삼거리 -
대슬랩 - 종지봉 - 암봉 - 성주봉 - 안부 - 암봉 우회 - 석굴 - 954봉 - 운달산 - 헬기장 - 화장암삼거리 - 김룡사
■ 함께 하신 산우님
메트로칸님,바울님,촌닥님,깜상님,거모랑님,국화님,국화+1님,2님,3님,낚시대장님,설백호님,호호님,선인장님,다니엘님,
1ton님 그리고 너울 이상 16명
■ 이동경로 및 산행코스
ㅇ 2007. 3. 3.(토) 06:30 : 안양농수산물시장 출발
ㅇ 09:20 : 경북 문경시 문경읍 당포1리 마을회관 도착
ㅇ 09:40 : 당포리 마을회관 출발 - 두번째 다리 직전 성주사 이정표
ㅇ 10:10 : 대슬랩 정상
ㅇ 10:40 : 암봉
ㅇ 11:20 : 성주봉
ㅇ 11:40 : 석굴
ㅇ 12:10 : 954봉
ㅇ 12:20 - 13:30 : 안부에서 점심식사
ㅇ 14:40 : 운달산 정상
ㅇ 15:50 : 화장암삼거리
ㅇ 16:10 : 김룡사
ㅇ 16:30 : 김룡사 조금 지나 식당도착(김천식당)
ㅇ 17:40 : 저녁식사 후 출발
ㅇ 21:10 : 안양농수산물시장 도착
이상 산행시간 : 6시간 30분(점심식사, 휴식시간 포함)
산행지도
당초 산행대장이 속리산 토끼봉/묘봉 코스를 갈려고 했었는데 산불방지를 위한 출입통제가 되어 급하게 산행지를 바꾸었습
니다.
얼마나 당황하였을까?? ㅎㅎ
운달산!!!
한두번 이야기는 들은 것 같은데 경상북도 문경에 있는 알고 있는 산이라야 황장산과 지난번 개척산행 때 갔던 신선봉,
마패봉 정도였습니다.
내 이름에 구름雲자가 들어있어서 인가?? 괜시리 관심이 가는 산입니다.
☞운달산은 어떤 산인가요??
소백산과 북동쪽에 이웃하고 있는 산으로 비교적 교통편이 나빠서 덜 알려진 산중의 하나다. 운달산은 오염되지 않은 자
연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깊은 산이다.
이 산은 또 1000가 넘는 높이에 걸맞지 않게 겉보기에 정상이 불분명한 것이 특징이다.
반면 정상에 이르기까지는 몇 개의 작은 봉우리를 넘어야 하는 공룡능선이 이어져 오르고 내리는 등산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정상 바위에서는 대미, 주흘산, 백화산 등이 눈앞에 보이고 펑퍼짐한 능선에는 수림이 빽빽하다. 이와 함께 급경사와 바위
를 타고 능선 바로 옆을 도는 힘든 구간도 있어 감칠 맛을 더해준다.
산행기점은 김룡사가 되는데 정상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대성암, 화장암을 비롯, 금선대가 해발 700m 되는 곳에 있어 산행에
도움이 된다.
남쪽 기슭의 울창한 송림에 신라 진평왕 10년(588년) 운달조사가 창건한 고찰 김룡사(金龍寺)있으며 김룡사 일원의 계곡을
운달계곡이라고 일컫는다.
맑은 물과 짙은 녹음이 어우러진 운달계곡은 소박하면서도 정감이 넘치는 분위기를 자아내며, 문경8경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한국관광공사 폼페이지 펌]
산행시작은 당포1리 마을회관에서...
오늘의 산행시작 지점은 이곳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산북면 당포1리 마을회관입니다.
물론 운달산만 다녀올려면 우리가 오늘 하산할 날머리인 김룡사에서 시작해서 운달산을 거쳐 원점회귀를 하지만 오늘
우리는 이곳부터 시작해서 종지봉 대슬랩을 지나 성주봉을 거쳐 운달산으로 종주산행을 할 것입니다.
산행들머리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하차하여 화장실도 이용하고 산행준비를 합니다.
☞ 어떻게 가나요??
안양에서 당포1리마을회관 가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안양농수산물시장 -> 북수원IC -> 영동고속도로 -> 여주 지나 중앙내륙고속도로 -> 문경IC -
- 산북면 당포리 방향으로 약 10여분 당포1리마을회관
토요일 새벽 6시 30분
안양농수산물시장에서 모여 출발했습니다.
빗발이 간혹 내리고 하늘은 잔뜩 흐린 것이 ㅎㅎ
요즈음은 너무도 정확히 맞추는 기상대가 간혹은 원망스럽기까지 합니다.
세상살이가 간혹 예외도 좀 있어야 재미 있는데...
마을회관 앞에 있는 쉼터
당포1리 마을회관 앞에 있는 쉼터 모습입니다.
기와를 얹었지만 갑자기 어릴 적 원두막 생각이 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농촌의 아침
내린 비에 한껏 물기먹은 문경읍 산북면 당포1리 농촌마을의 아침입니다.
한가로이 아침 농로를 걷던 한 촌노가 우리를 반겨줍니다.
마침 오늘이 이 마을에서 제사를 모시는 날이라고 하는군요...
마을주민이 세운 듯한 훈민석(?)
마을주민인 최영섭이라는 분이 동네사람들을 한마음 한뜻으로 모으기 위해 세운 것으로 보이는 비석이 마을회관 앞에 서
있습니다.
종지봉의 모습
비는 내리지 않습니다만 올려다 본 종지봉은 잔뜩 운무에 가려 제 모습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종지봉 가는 길 - 다리를 건너서
마을회관을 출발하여 오른쪽으로 조금 오르면 다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다리를 건너야 합니다.
앞선 산우들이 발길을 서두르고 있군요...
성주사/종지봉 이정표
다리를 건너기 전에 이렇게 이정표가 서 있습니다.
이곳은 각종 지도에서는 종지봉으로 기재되어 있는데 마을에서는 장군봉이라고 한답니다.
성주사 오르는 길
성주사로 가는 마을 임도를 산우들이 오르고 있습니다.
길옆에는 유난히 사과나무가 많이 있더군요...
이곳에서 가까운 제 고향 죽령에도 죽령사과가 유명한데....
가파른 아스팔트길
산행들머리를 찾아 가파른 마을 아스팔트길을 올라가고 있습니다.
마을주민들의 정성이 모인 돌탑
세개의 돌탑이 쌓여져 있습니다.
아마도 이곳에서 제사를 모시나 봅니다.
가장 우측 돌탑 전면부의 모습입니다.
상부에는 천지신명이라고 비석이 놓여 있습니다.
종지봉 대슬랩
임도를 벗어나 산행들머리에 진입하자 갑자기 된비알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한 10여분 치고 올라가는데 여기저기서 탄성이 쏫아집니다.
지난 일주일 성실(?)하게 보내지 못한 저도 내심 은근히 다리근육이 뭉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힘들었던 된비알이 끝이나자 아득한 종지봉 대슬랩이 우리를 기다립니다.
대슬랩 중간부분에서 올려다 본 모습
대슬랩은 밧줄이 설치되어 있고 또 착지점들이 있어서 그리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빗물에 젓어서 조심 조심 올라갑니다.
한번에 치고 올라갈 수 있는 높이는 아니어서 중간 중간 쉬면서 천천히 올라가면 그리 위험하지는 않습니다.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지 모르고 자일을 준비해온 국화대장님만 음청 힘들었습니다 ㅎㅎㅎ
종지봉 대슬랩에서 본 당포1리 모습
대슬랩을 오르다 내려다 본 당포1리 모습입니다. 자욱한 운무가 끼어 있다가 잠시 자리를 비워 살짝 모습을 보여줍니다.
운무가 산자락에 걸려 있는 것이 왜 이 산이 운달산(雲達山)인지 알게 해 줍니다.
암봉내려가는 밧줄구간
종지봉 정상에서 완만한 등산로를 따라 조금 진행하니 암봉이 나타납니다.
오늘의 산행대장님이 머찐 자세로 암봉 밧줄구간을 내려가고 있습니다.
먼저 내려간 호호님의 저 여유로운 모습 ㅎㅎ
성주봉가는 길에 본 한폭의 산수화
성주봉 가는 길에 본 동양화와 같은 모습입니다.
자욱한 운무가 산을 가리다가 바람에 이끌려 산자락에 걸려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구름과 산(雲山吟)
안정복(安鼎福, 1712 - 1791)
白雲有起滅(백운유기멸)이나 흰 구름은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지만
靑山無改時(청산무개시)라 푸른 산은 모습 바꿀 때가 없네
變遷非所貴(변천비소귀)니 이리저리 변하는 건 좋은 게 아니고
特立斯爲奇(특립사위기)라 우뚝한 그 모습이 아름다운 거지
이 시의 작가 안정복은 18세기 조선후기의 학자이며 사상가였다.
그는 실학의 선구자였던 이익의 학문과 사상을 계승하였는데 천주교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그는 철저한 주자학자였지만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하늘에 떠있는 시시때때로 모습이 변하는 구름보다 늘 우뚝하게 변하지 않으면서 정정하게 자리를 지키는 산이 더 아름
답다
고 말한다.
우리는 이 시에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 자연을 통해 우리의 삶을 다시 돌아보고자 하는 작자의 지혜를 발견하게 된다.
[모 문학평론집에서 펌]
하지만 오늘 저는 마침 산허리를 감싸안은 구름과 산이 너무 좋습니다.
구름이 있어 더 좋군요 ㅎㅎ
성주봉
성주봉 정상입니다.
☞ 성주봉은?
성주봉은 경상북도 문경시에 있는 한 암봉이다.
운달산(1097.2)의 지봉이라고 하면 산의 위치를 대강 알 수 있을 것이다.
성주봉(961m) 성주봉은 운달산에서 문경읍 쪽으로 붙어 있는 암벽이 보기 좋은 산이다.
운달산 정상에서 능선을 타고 성주봉으로 종주할 수 있으나 자일과 암벽장비가 있어야 안전하다. 문경읍 당포리에서
성주봉만을 등산할 수 있다
문경에서 5-6킬로 정도 오면 당포리가 다가온다.
이 길은 주흘산뒤로 뻗어 포암산 아래 하늘재로 이어지는 작은 도로이다.
성주봉 등산을 위해서는 당포2리 마을 앞까지 오면 된다.
성주봉은 운달산의 지봉임에도 거의 육산에 가까운 운달산과는 사뭇 다른 암봉이다.
마을 앞에서 보면 성주봉은 그림 같은 암봉미를 갖춘 아름다운 산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산행은 동네 뒤로 난 산길로 들어서서 급경사 슬랩에 붙어 능선으로 올라가야 한다.
슬랩바위는 별로 미끄럽지 않아 유경험자들이 걷기엔 전혀 문제가 없다.
군데군데 소나무숲이 우거진 이 슬랩지대에서 동네를 내려다보거나 주흘산쪽으로 바라보면 암봉을 올라가는 멋을
한껏 즐길 수 있다.
깊은 협곡이 보이는 능선에 작은 암릉이 보이고 암릉위에 소나무가 그 뒤의 심곡을 배경으로 푸르름을 빛내는
광경을 보면 경탄을 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다.
슬랩지대를 통과하여 능선길을 찾는 것이 성주봉 산행의 첫째관문을 통과하는 격이 될 것이다.
능선에 올라온 뒤 30여분이면 주능선에 이를 수 있고 이어 소나무가 울창한 능선을 지나면 삼각형의 암봉이 눈앞에 다가선다.
이 암봉은 정상에 이르기까지 통과해야 하는 3개의 암봉중 첫번째 암봉이다.
각각의 암봉은 올라갈 때도 주의하는 것이 좋지만 내려설 땐 보조자일이 필요하다.
3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맛은 암봉산행의 묘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봉우리를 넘으면 거대한 봉우리가 하나씩 앞을 막아서서 도전을 기다리는 억센 장군처럼 보인다.
마지막 암봉인 정상 암봉 앞에 서면 마천루를 올려다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 위엄있어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홀드가 있어서 암봉산행을 즐길 정도의 산꾼이라면 산행에 별다른 무리가 없을 것이다.
정상에서 주파해온 암봉과 암봉아래의 대 협곡을 내려다보면 성주봉이 운달산의 지봉이지만 엄청난 암봉미를 갖춘 아름다운
산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산은 별로 찾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험한 산이다. 그래서 산이 깨끗하다.
송이버섯 채취시기엔 산으로 올라가는 것이 금지된다.
이런 산을 소개하는 것이 아름다운 시골 숫처녀를 서울거리에 내다 파는 격이 된다면 곤란할 것이다.
이산에 다시 가서 버린 병이나 과자봉지, 과일껍질을 목격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앞으로 좋은 산일수록 소개하지 말라는
경고로 생각하고 그것을 실천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산을 오르내리는데 약 6-7시간을 잡는 것이 좋을 듯하다. 스포츠식 산행은 이 산에서는 어울리지 않는다.
경관을 보고 우리 산의 아름다움에 심취할 시간도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산하에서 펌]
성주봉 산행 개념도
지금까지 온 성주봉 산행 개념도입니다.
종지봉 대슬랩 정상에서 이곳까지는 세개의 암봉을 넘어야 하는데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는 구간입니다.
릿지화는 필수이구요... 초보자는 유경험자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경관은 너무나 아름답지만 그리 녹녹하게 제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산입니다.
성주봉 안내문
성주봉 정상에 설치된 성주봉 안내문입니다.
석굴
성주봉을 내려와 암봉을 우회하여 954봉 오르는 길에 만난 석굴의 모습입니다.
그냥 석굴인가부다 하고 지나쳤는데 다행히 설백호님께서 사진을 남기셨습니다.
되돌아본 954봉
운달산 가는 길에 되돌아본 954봉입니다.
오르는 길이 아주 험합니다.
운달산 가는 길에 암봉을 내려오다 본 소나무 모습
운달산으로 향하던 중 어느 암봉(아마도 954봉이었던 것 같은데..)을 내려오다 바라본 절벽과 소나무의 모습입니다.
나는 아무래도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 글 김장호님
나는 아무래도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그 외로운 봉우리와 하늘로 가야겠다.
묵직한 등산화 한 켤레와 피켈,
바람의 노래와 흔들리는 질긴 자일만 있으면 그만이다.
산 허리에 깔리는 장미빛 노을,
동 트는 잿빛 아침만 있으면 된다.
나는 아무래도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혹은 거칠게, 혹은 맑게,
내가 싫다고는 말 못할 그런 목소리로
저 바람소리가 나를 부른다.
흰 구름 떠도는 바람부는 날이면 된다.
눈보라 속에 오히려 따스한 천막 한동과 발에 맞는 아이젠,
담배 한가치만 있으면 그만이다.
나는 아무래도 다시 산으로 가야겠다.
떠돌이의 신세로 칼날같은 바람부는 곳, 들새가 가는 길,
표범이 가는 길을 나도 가야겠다.
껄껄대는 산 사나이들의 신나는 이야기와
기나긴 눈 벼랑길이 다 하고 난뒤의
깊은 잠과 달콤한 꿈만 내게 있으면 그만이다.
- 김장호,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 - 알파인 에세이 중에서
운달산 정상을 향하여..
메트로칸님이 운달산 정상을 향하여 마지막 피치를 올리고 있습니다.
이틀 전 백두대간 산행을 한 후라서인지 저도 메트로칸님도 다리가 아주 무겁습니다.
운달산 정상
산행을 시작한 지 약 5시간(식사시간 포함)이 지나서야 운달산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앞서 도착한 산우들과 아마도 김룡사 방면에서 올라 온듯한 일단의 산객들이 있어 성주봉 정상에서와는 달리 제법 왁자지껄
소란스럽기까지 합니다.
오늘 처음 우리와 함께 했던 제비님이 저 정상석을 들어올리는 시범도 보이고 ㅎㅎㅎ
함께하신 산우님들과...
운달산 정상석을 중심으로 오늘 함께하신 분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개척산행 단골멤버들에 오늘은 새로운 분들이 참여하였습니다.
이렇게 함께 산행을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인연인지...
아마도 그것은 우연을 가장한 필연일지도 모르지요 ㅎㅎㅎ
운달산 정상지나 헬기장 이정표
운달산 정상에서 잠시 하산코스에 대하여 논의합니다.
그냥 김룡사로 하산할 것인지 아니면 조금 능선을 타고 하산하는 코스를 택할 것인지...
결국 안양귀경시간 등을 고려해서 공지대로 김룡사로 하산하기로 합니다.
하산 날머리 모습
운달산은 성주봉과는 달리 육산입니다.
하산길은 정말 지루합니다.
무념무상 아무 생각없이 끝없이 내려오는 너무나 재미없는 길 ...
중간에 만나 함께 하산하던 어느 산우의 말이 아주 인상적입니다.
산행 초보는 오를 때는 뒤에서 내려갈 때는 날라간다.
산행이 중간정도 되면 올라갈 때 빠르고 내려갈때 날라간다.
산행고수는 오를때와 내려갈때 차이가 없다. 내려갈 때 뒤에서 천천히 간다.
산행 초고수는 올라가서는 헬기를 부른다 ㅎㅎㅎ
화장암 삼거리
이곳 김룡사에서 부터 시작해서 운길산까지 원점회귀를 하는 산객들이 많아서인가 이정표가 잘 정비가 되어 있습니다.
고통에 신음하는 나무야!!!
수액체취를 목적으로 저렇게 해 놓았군요...
자연의 최대 적은 바로 인간입니다.
김룡사 가는 길에 오늘의 산행대장님
김룡사로 가는 호젓한 길을 산우들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김룡사
김룡사 입구에서...
☞ 김룡사
김룡사는, <운달산김룡사사적서 (蕓達山金龍寺事蹟序)>에 따르면, 신라 진평왕 10년(588) 운달조사(蕓達祖師)가 개선하여
사명을 운봉사(蕓峰寺)라 하였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본래의 절 이름인 운봉사라 사명이 조선시대 후기까지도 그대로 사용되었다고 생각되는 것은 사중에 전해지는 괘
불화기 (掛佛畵記, 1703년) 에도 운봉사라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사명이 김룡사로 바뀐 연유는 여러 가지로 전해지고 있으나, 그 중에서 가장 믿을 만한 것은 김씨 성을 가진 사람
이 죄를 지어 이곳 운봉사 아래에 피신하여 숨어 살면서 신녀가(神女家)를 만나 매양 지극한 정성으로 불전에 참회하더니
한 아들을 낳아 이름을 용이라 하였다.
그 이후부터 가운이 크게 부유해져 사람들은 그를 김장자(金長者)라 하였고, 이로 인하여 동리 이름 또한 김룡리(金龍里)라
하였으며, 운봉사 역시 김룡사로 개칭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이 절은 최소한 18세기 이후 김룡사란 이름으로 되었다고 생각된다.
지금의 김룡사가 큰절의 초창은 인조2년에 수행 공덕으로 고명했던 혜총선사가 제자들과 힘을 모아 이룩하였으며 그 후 소실
된것을 의윤, 무진,대휴의 세분 대사가 옛모습을 되살려 놓아 번창시에는 48동에 건평 1,188평이나 되었으나 현재는 대소
전각 30여채가 남아 있다.
험상한 모습의 사천왕 신장상이 방문객을 압도하고 대웅전을 위시한 고색 창연한 전각들이 그 옛날의 창성을 말해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경흥 강원 건물은 국내 최대 강원건물의 하나로 300명을 동시에 수용 할 수 있는 온돌방으로서 그 부엌아궁이는
어린 학생들이 걸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크다.
인조 27년 설잠대사가 조성한 대웅전의 불상은 그 규모가 웅대하며 기예 또한 현묘하고 성균대사가 만든 후불 탱화가 유명하다.
고종26년에 사증대사가 조성한 거대한 쾌불탱화를 비롯한 죽은 사람의 생,전사가 기록 영화처럼 비쳐진다는 거울 등 수많은
문화유산을 소장하였으며 석탑과 석상을 절뒤에 세운것은 그 선익을 진압한다는 뜻이며 혹은 산혈의 촉맥을 보우하는 뜻이
라 한다.
김용사에서 특이한 것은 절 입구에 지은 지 300여년 된 해우소(근심을 해소시키는 장소라는 의미의 화장실)가 있는데 토속
적인 목조 건물로 지어졌다.
산행후기를 마치며...
본디 산행후기라는 것은 산행을 마친 후 곧바로 빠른 시간내에 산행 후의 느낌과 기억을 잘 정리하여 작성하여야 하는 것인데
사량도지리산 산행준비 등등으로 차일피일 미루다 무려 10여일이 지나서 후기를 작성하려고 하니 어렵군요..
기억도 정확하지 않고 ㅎㅎ
뜻밖에도 지난 밤 내린 비로 인하여 성주봉과 운달산의 본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맞이하는 행운을 준 산행대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많은 산우님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아조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