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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구석구석/경기옛길

경기옛길 평해길 7길 지평향교길 석불역-지평양조장-지평의병,지평리전투기념관-지평향교-용문역 여행기록

♧ 을미왜병 ♧

♧ 트레킹일자 : 2025.04.011.(금)
♧ 트레킹코스 :  양평 석불역-지평면사무소-지평의병,지평리전투기념관-지평향교-용문역 // 거리 약 10.5km, 트레킹 시간 약 3시간 2분(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

※ 여행세부일정

○ 12:59 ~ 13:17 : 중앙선 석불역
-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망미리 1317-15
○ 13:21 : 석불3교
○ 13:45 : 동원농장
- 양평군 지평면 지평리 72-4
○ 14:02 ~ 14:19 : 지평면사무소
○ 14:25 : 지평양조장 홍보관(공사중)
○ 14:30 : 지평교
○ 14:36 ~ 14:44 : 지평의병,지평리전투기념관
○ 14:46 ~ 14:49 : 지평향교
○ 15:02 : 협동교
○ 15:06 ~ 15:14 : 지평역 앞 사거리
-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
○ 15:18 : 송현1리(역말) 버스정류장
- 진행방향 1시방향 버스정류장 옆 도로 진행
- 양평군 지평면 송현리 711-7
○ 15:37 : 꽃반들마을 입구
○ 15:46 : 그릇고개
- 양평군 용문면 마룡리 181-8
○ 15:58 : 화전교
- 양평군 용문면 다문리 3-2
○ 16:06 : 용문다목적청사
○ 16:15 : 용문천년시장
○ 16:19 : 용문역 도착 트레킹 종료
- 양평군 용문면 다문리 305-16

※ 관련 여행기록
- 경기옛길 평해길 6길 거무내길 양평역-갈산공원-흑천-원덕역-용문역 여행기록 : https://jungwa686.tistory.com/m/15974160
- 경기옛길 평해길 8길 고래산길 일신역-구둔역-고래산임도-석불역 여행기록 : https://jungwa686.tistory.com/m/15974278


석불역에서 경기옛길 평해길 8길 고래산길 트레킹을 마치고 땀과 먼지로 엉망이 된 얼굴을 씻으려고 화장실을 찾았더니 역사 건물 내에 화장실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은 잠겨있고 열차 출발 15분 전에 출입문을 개방한다고 안내문이 붙어 있네요...  

하는 수 없이 수건에 식수를 뿌려 얼굴에 땀과 먼지만을 닦아내고 그늘에 앉아 쉬었다가 경기옛길 평해길 7길 지평향교길 트레킹을 시작했습니다.

경기옛길 평해길 7길 지평향교길은 용문역에서 시작해서 이곳 석불역에서 마감하는 경기옛길 홈피 공지거리 약 10.0km의 트레킹 코스인데 역시 오늘은 거꾸로 걷습니다.

♧ 석불역을 출발합니다 ♧

석불역을 출발했습니다.
석불역 옆 하천을 우측에 두고 천변길을 걸어 내려 갔습니다.

하천 건너 여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마을은 망미2리입니다.

간이역이란 이용하는 승객이 적어 역장이 없는 기차역을 말한다. 업무를 담당하는 역무원이 근무하지만 이마저도 없이 기차만 정차하는 간이역도 있다. 특유의 분위기와 아련함 덕분에 낭만과 추억을 느끼기 위해 일부러 간이역을 찾는 이들도 많다.

역무실이 있지만 근무하는 직원은 없다. 청량리행 방향 기차를 타려면 입구 오른쪽 지하 통로를 이용해 건너면 된다.

원래 석불역은 이용객이 줄어 완전히 사라질 운명이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군민과 군청이 합심해 서명운동까지 벌여 석불역 철거를 막아 2013년 새 건물을 지었다. 덕분에 간이역이라고 하면 기대되는 오래된 건물의 분위기는 없지만 오히려 작고 아담한 역 건물이 들어서게 되었다. [출처 : 대한민국구석구석 여행이야기]
♧ 물소리길에 현혹되어... ♧

하천변을 걸어 가다 두번째 사진에 보이는 '석불3교' 다리를 지나 다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물소리길 안내표지를 만났습니다.
물소리길 안내표지는 네번째 사진에 보이는 계단을 통해 하천으로 내려가라 합니다.

거이 경기옛길과 물소리길이 일치했기에 별다른 의심없이 내려가서 여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하천을 건너가려는데  다행히도 램블러 '따라가기 알람'이 경로이탈 경고를 울려 줍니다.

경기옛길 평해길 7길 지평향교길은 이곳에서 계속 천변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물소리길 안내표지에 잠깐 현혹되어 깜짝 알바!

♧ 낮은 산을 하나 넘자! ♧

마을길을 걸어 들어가 사유지 가옥 옆으로 돌아 낮은 산을 하나 넘어 갑니다.
이곳도 산불이 발생했었나 봅니다.
당연히 길은 엉망이고 그나마 서 있는 나무들도 모두 새까맣게 그을렸습니다.

요즈음 경상북도 의성, 울주 산불로 국가적 재난이 발생한 상황인데...
애써 키워온 나무가 이곳에서도 다 타버렸네요.

2024년 11월에 이곳을 걸었던 선답자 후기에서는 이곳이 숲이 무성했던 산길이었으니 최근에 불이 났던 것으로 보입니다.

♧ 지평리로 넘어 오다! ♧

양평군 지평면 망미리에서 낮은 산을 넘어 지평리로 넘어 왔습니다.
여섯번째 사진에 지평1리 햇골마을이 보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금번 경상북도 의성 산불처럼 바람의 영향이 없었는지 지평리 쪽으로 산불이 넘어 오지는 않은 듯 합니다.

♧ 지평4리마을회관 ♧

도로를 내려와 네번째 사진에 보이는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합니다.
다시 도로를 걷다 삼거리를 만나면 또 좌측으로 진행해서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지평4리마을회관 앞을 지났습니다.

이제 지평 시내로 들어 왔습니다.

♧ 지평면사무소 ♧

시내길을 걸어 지평면사무소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지평면사무소 화장실로 들어가 경기옛길 평해길 8길 고래산 임도길을 걸으면서 땀과 먼지가 범벅이된 얼굴을 씻는 등 행장을 정리하고 면사무소 앞 편의점에서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 마시면서 쉬었습니다.

을미의병의 고장 지평면에 어울리게 네번째 사진에 보이듯이 지평면사무소 앞에 거대한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고 그 뒤에는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보았고 드라마 미스터선샤인의 모티브가 되었다는 영국인 종군기자가 구한말 실제 양평지역에서 만나 촬영했다는 이곳 의병 사진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사진도 사진이지만 어느 80세 노인 의병이 선교사에게 했다는 말이 큰 울림을 줍니다.

"우린 어짜피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자유민으로 싸우다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 지평막걸리 맛 좀 보고 가즈아! ♧

이곳까지 왔으니 지평막걸리 본산지에서 맛 좀 보고 가야겠지요?

지평면사무소를 뒤로하고 지평양조장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네번째 사진에 보이는 양조장에 도착했건만 내부수리 때문인지 이유는 모르겠으나 홍보관을 4월말에 개관한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네요.

하는 수 없이 대신 트레킹을 마치고 용문역에서 식사를 하면서 뒷풀이로 쇠주 1병 마시기로 하고 길을 이어 갔습니다.

다섯번째 사진은 지평중학교.

♧ 지평의병,지평리전투기념관 ♧

첫번째 사진에 보이는 '지평교' 다리를 걸어 지평천을 건넜습니다.
다리 건너 계속 도로를 따라 가자 네번째 사진에 보이는 '지평관아터' 안내문이 보였습니다.
이곳 지평리가 조선시대 지평현 읍치지역이라고 하네요.
읍치는 군, 현을 다스렸던 관아를 비롯해서 객사, 향청 등 관공서가 있었던 곳이라 합니다.
하지만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지평관아터' 안내판만 있지 주변은 너무 어지럽습니다.

'지평관아터'를 조금 지나자 마지막 세장의 사진에 보이는 '지평의병,지평리전투기념관'에 도착했습니다.
기념관 내부로 들어가자 맞이하는 것은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지평의 함성'입니다.

지평리 모습의 테두리 내에 '지평의 함성'이라는 주제어를 넣은 것이 꼭 횃불처럼 불타오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지평의병의 역사 ♧

전시관 내에는 을미왜병의 시초가 되었다는 양평지역 의병활동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번째 사진에 보이는 사진이 영국 런던 데일리메일 종군기자로 1904년과 1906년 두차례 한국을 방문 일제의 침략상을 세계에 알리고 한국 독립운동을 후원했던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Frederick A. Mackenzie)라는 분입니다.

세번째 사진이 맥켄지가 담은 의병들의 모습과 대화내용입니다.
여섯번째 사진에는 양평지역 의병장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음 순간 5, 6명의 의병이 마당에 들어와 내 앞에서 정렬하더니 경례를 했다. 그들은 모두 18세에서 26세 정도의 청년들이었다. 영리하게 보이고 용모가 단정한 한 청년은 아직도 한국 정규군의 구식 제복을 입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군복 바지를 입었다. 이들 중 두 사람은 흐느적거리는 낡아빠진 한복을 입고 있었다. 가죽 구두를 신고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들은 허리에 손수 만든 무명 탄대(彈帶)를 감고 있었고, 거기에 총알이 반쯤 들어 있었다. 한 사람은 머리에 터키 모자 같은 것을 쓰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두건을 감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갖고 있는 총을 보았다. 여섯 사람이 각각 다른 다섯 종류의 무기를 갖고 있었는데 어느 것이나 제대로 쓸 만한 총이 없었다. 한 사람은 가장 낡은 유형의 화승총으로 알려져 있는, 총구로 탄환을 재는 구식 한국 총을 자랑스럽게 가지고 다녔다. 그 남자의 팔에는 도화선인 화승이 감겨 있었고, 앞쪽에는 화약 주머니와 장전용 탄환 주머니를 달고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 총구로 탄환을 재는 총이 대부분의 의병이 쓰고 있는 무기였다. 총에 화약을 재기 위해 쓰는 꽂을대는 자기 집에서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었다. 총신은 녹슬어 있었다. 총의 가죽 멜빵은 없고 대신 무명으로 만든 끈이 달려 있을 뿐이었다.

그는 자기들의 전도가 반드시 밝은 것만은 아님을 인정하였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로 살기보다는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죽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출처 : 사료로 본 한국사]
♧ 을미의병기념비 ♧

이곳 지평은 6.25전쟁 때에도 공산군의 남침을 저지하기 위해 유명한 지평리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지요.

지평리전투 소개와 함께 밖에는 미국 전차모델을 참고하여 우리나라가 최초로 조립생산해서 현재 한국 K-방산의 밑거름이 되었던 M48A3K 탱크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네번째와 다섯번째 사진은 지평리지구전투전적비와 UN(프랑스군)참전 충혼비 그리고 UN(미군) 전승 충혼비입니다.

여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을미의병기념비'를 보고 내려와 지평향교로 향했습니다.

♧ 지평향교 ♧

지평향교에 도착했습니다.
향교는 유학을 가르치고 인재를 길러 냈던 공립 지방 교육기관으로 지금의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을 담당하였다고 하네요.

향교를 한번 둘러보고 나와 지평역으로 향했습니다.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합니다.

♧ 지평천 제방길 위 전시회? ♧

너른 들녁 사이 농로를 걸어 다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협동교' 다리를 건너려고 하는데 지평천변 뚝방길에 마지막 두장의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다가가서 보니 인근 초등학교 이이들 그림을 전시해 놓은 듯 합니다.
이왕 전시해 놓을려면 제목과 누가 그린 그림인지도 좀 표기해 주지....
기껏 그림 그려서 제출한 아이들 상처 받습니다!

♧ 지평역 삼거리 ♧

협동교를 건너 지평역으로 향했습니다.
지평천을 따라 둘레길이 조성되어 있네요.

다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것은 빙해 담솔이라는 분이 쓴 '지평리 사람들'이라는 시비입니다.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삼거리에서 경기옛길 평해길은 우측으로 도로를 걸어 진행합니다.

오전에 다소 더운 날씨에 경기옛길 평해길 8길 고래산길을 걸으면서 고래산 임도를 넘느라 땀을 흘렸더니 갈증이 심하게 왔습니다.
삼거리 모퉁이에 있는 편의점에 들러 다시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으로 갈증을 달래고 출발했습니다.

지평역은 삼거리 뒷편에 있는데 패스!

♧ 송현리로 건너오다! ♧

양평군 지평면 지평리에서 송현리로 건너 왔습니다.
네번째 사진에 보이는 사거리를 만나면 오후 2시 방향 다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송현1리(역말)' 버스정류장 옆길로 진행합니다.

이곳 송현1리는 조선 시대 역참이 있던 곳이라 예로부터 ‘역말’로 불리던 마을이라고 하네요.

♧ 송현1리 ♧

두번째 사진에 보이는 '송곡2교' 다리를 건너 송현1리 마을로 들어가 마을길을 걸어 낮은 고개를 오릅니다.

조선시대 마부와 말을 이용하여 물자 수송, 공문서의 전달, 관리들의 숙박이 이루어지도록 했던 역참이 있었던 곳이어서 그런지 마을길 이름도 '역말5길'입니다.

♧ 꽃반들마을 ♧

'역말5길' 도로를 계속 걸어 올라와 꽃반들마을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꽃반들마을로 향했습니다.

아래 신문기사를 보니 이곳은 생긴지 그리 오래된 마을이 아니네요.

꽃반들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12년 전인 2012년부터 지평면 갈지산 남쪽자락에 전원택지 조성사업을 통해 자연적으로 형성됐으며, 주변에 아름다운 꽃이 많이 피던 것을 주민들이 꽃반들마을이라고 부르며 전해오던 마을이다.

해당 마을은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3단지가 조성됨에 따라 약 125가구가 거주하는 규모있는 마을로 형성되어 지난 1일 송현4리로 새롭게 행정구역으로 편성됨에 따라 별도의 리로 승격됐다.[출처 : 백운신문,2024.07.09.]
♧ 그릇고개 ♧

이곳 꽃반들마을에는 전원주택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꽃반들마을을 지나 내려오자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지평면과 용문면의 경계를 이루는 그릇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이제 양평군 지평면을 떠나 용문으로 넘어 갑니다.
그릇고개? 이름이 왜 그릇고개일까요?

"양평군 용문면 요골(요곡)은 과거 옹기를 제작하던 마을이다. 지명에 이미 '窯'(가마 요)라는 한자가 담겨 있다. 용문과 지평을 지나는 길도 그릇고개(그루고개)라 불렸는데, 좋은 옹기토가 나던 일대에 옹점과 옹기전이 모여서 사람들이 정착하게 됐다."

양근(양강)은 조선시대 궁중 사옹원의 그릇(식기)으로 쓸 백자를 납품했던 '양근분원'(楊根分院, 분사옹원)이 있던 지역이다. 광주 분원과 함께 한강을 따라 뗄감과 그릇을 운송하던 곳인데, 용문성당도 양근성지와 함께 100년이 넘는 역사가 숨어있다. 일제시대 박해를 피해 교인들도 요골을 찾아와 옹기를 만들며 살았으며, 현재도 그 흔적이 남아 있으며, 아직도 신점2리에는 옹기(질그릇) 장인들이 살고 있다.

"양평군 용문면 요골(요곡)은 예로부터 옹기를 제작하던 마을이었습니다. 또한 용문면과 지평면을 지나는 길을 그릇고개(그루고개)라 불렸는데, 좋은 옹기토가 나던 일대의 옹점과 옹기전이 모여 사람들이 정착했어요. 시간이 지나 현재에는 용문면 신점리, 독점(고개) 등지에 소수의 옹점만 남아있으며 생활양식이었던 까닭에 요골과 옹기점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하거나 연구한 자료가 거의 없습니다. 이번 전시는 그릇고개를 따라 육로와 한강을 거쳐 옹기를 운송했을 과거를 상상하며 마련했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 용문으로 넘어 왔습니다 ♧

그릇고개를 넘어 첫번째 사진에 보이는 삼거리에서 우측길로 접어들어 계속 걸었습니다.

여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표지석에는 "그루고개"라 표기하고 있네요.

♧ 화전교에서 본 흑천 ♧

용문시내로 들어가는 두번째 사진에 보이는 '화전교' 다리 위에서 세번째 사진에 보이는 흑천을 만났습니다.

경기옛길 평해길 6길 거무내길 트레킹 생각이 나네요.
마지막 사진에 보이듯이 지평이나 용문이나 들녘 참 넓다!

♧ 용문역 도착 트레킹 종료 ♧

첫번째 사진에 보이는 '용문다목적청사' 앞을 지났습니다.
저 '용문다목적청사'에는 용문면사무소와 용문버스터미널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어 두번째 사진에 보이는 용문성당 앞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걸어 네번째 사진에 보이는 '용인천년시장' 앞을 지나 용문역에 도착해서 트레킹을 마감했습니다.

사실은 사전에 용문 맛집 검색을 열심히 해서 식당 한 곳을 정하고 왔는데 용인천년시장 인근 그곳을 찾아 갔더니 "재료소진. 오후 5시에 영업합니다"라고 안내문이 붙어 있네요.....


☞ 트레킹을 마치고..[  한국인이 꼭 기억해야 하는 푸른 눈의 이방인  ]☜


경기옛길 평해길 7길 지평향교길은 비교적 거리가 짧아 어렵지 않은 길이었습니다.
트레킹 내내 우리 근현대사의 아픈 시절이었던 일제에 맞섰던 을미의병에 대해 생각하는 길이었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인이 잊어서는 안되는 푸른 눈의 이방인 프레드릭 아서 맥켄지(Frederick A. Mackenzie)와  5~6명의 을미의병이 만났던 그 날 그 순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여행길이었습니다.

이제 경기옛길 평해길도 마지막 두코스만 남겨두고 있네요.
올 여름이 가기 전에 마무리하고 경기옛길 봉화길로 넘어가려 합니다.


♧ 봄비 속을 걷다 ♧

                                    -  글  류시화

☞  https://jungwa686.tistory.com/m/15974263

봄비 속을 걷다
아직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봄비는 가늘게 내리지만
한없이 깊이 적신다

죽은 라일락 뿌리를 일깨우고
죽은 자는 더 이상 비에 젖지 않는다
허무한 존재로 인생을 마치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봄비 속을 걷다
승려처럼 고개를 숙인 저 산과
언덕들
집으로 들어가는 달팽이의 뿔들

구름이 쉴새없이 움직인다는 것을
비로소 알고
여러 해만에 평온을 되찾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