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제2구간 성삼재-여원재 구간... 평촌산사랑모임에서 백두대간 종주라는 이름으로 하는 첫 대간산행이다. 작년 여름 나는 참석치 못했지만 제1구간 지리산 천왕봉-성삼재구간은 다녀왔단다. 대간길에 앞서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산제를 조촐하지만 정성 것 모셨다. 아무쪼록 대간길 뿐만이 아니라 평산모에서 하는 모든 산행에서 나 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이들에게 안전하고 행복한 산행이 되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제법 날씨가 쌀쌀하다. 산행준비를 하면서 방풍자켓을 배낭에 넣었다 뺐다 망설였는데 결국 배낭부피를 줄이려고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장도에 오른다. 손이 시려온다. 몸을 움추리고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들머리는 성삼재에서 약 10m정도 실상사방향으로 내려오다보면 왼편에 철문이 있다. □ 성삼재 해발고도 1070m의 지리산 성삼재. 구례와 남원(산내면)을 잇는 험준한 산길(지방도 861번)이 지나는 백두대간의 마루금 고개다. 대간의 마루를 지나는 길이니 고갯마루에서 바라다 보이는 주변 풍치는 입소문을 탈 만도 할 터. 위로 노고단(老姑壇·1507m), 옆으로 고리봉 만복대를 잇는 지리산의 주맥이 또렷하고 먼발치로 보이는 산동(구례군)의 너른 땅 풍수도 기막히다. 성삼재의 지명 유래는 삼한시대에 진한군에 밀리던 마한왕이 전란을 피하여 지리산 심산유곡으로 찾아들어 달궁 계곡에 왕궁을 세우고 피난할 때, 남쪽능선은 가장 중요한 곳이므로 성이 다른 3명의 장군을 배치하여 방어케 하였으므로 성삼재라 부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성삼재를 출발한지 약 30분 지나 고리봉에 도착했다. 사방은 캄캄하여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하여 산행을 하는데 문득 고개 들어 하늘을 보니 드문 드문 별빛이 반짝인다. 여기서는 조심해야 한다. 반드시 오른쪽으로 하산해야 대간길이라고 하는데 다시 한번 마음을 되새긴다. 후미에서 한참을 내려가는데 길이 좀 심상치 않다. "분명히 오른쪽으로 내려왔는데..." 약 10여분 하산하는데 급히 선두에서 다시 고리봉으로 올라가란다. ㅋㅋ 결국 알바를 했다. 고리봉에 되돌아와서 보니 분명히 고리봉 올라오자마자 오른편 길이 있다. 우리는 고리봉정상석을 바라본 상태에서 오른편 길로 하산한 것 ㅎㅎㅎ 속지 않으려면 고리봉을 오른 상태에서 오른편 길로 내려가야 한다. 제대로 만복대로 방향을 잡아서 내려가니 어느 덧 날이 밝아온다. 만복대에서 일출을 보려던 생각은 접어야 할 것 같다. 듣던대로 만복대 가는 길에는 많지는 않지만 억새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묘봉치 헬기장을 지나 만복대가는 능선에서 만난 일출... 날씨가 맑지 않아 뿌옇게 보인다. 디카를 여러번 눌렀는데 겨우 건진 것이 이 사진 한장.... 만복대가 2km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자 아름다운 능선이 나타난다.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 산능선이 너무나 아름답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억새밭이 나타났다. 만복대 오르는 길.. 억새밭에서 사진 한장..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 억새물결을 따라 만복대를 오른다. 저 멀리 만복대 정상이 보인다. 만복대 정상. □ 만복대 전라남도 구례군과 전라북도 남원시 사이의 도계를 이루는 산. 높이는 1,437m이다. 노고단(老姑壇:1,507m)·반야봉(盤若峰:1,732m)과 함께 지리산 국립공원의 서부를 구성하며, 소백산맥 중의 고산을 이룬다.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지리산의 많은 복을 차지하고 있다고 하여 만복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산 전체가 부드러운 구릉으로 되어 있어 산 높이에 비해 산세가 부드러운 편이며, 고리봉(1,305m)까지 3km에 이르는 남능선에는 지리산국립공원에서 가장 큰 억새 군락지가 있어 주변의 정경과 대조적인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정상에서는 노고단, 반야봉, 천왕봉(1,915m) 등 지리산 주능선이 한눈에 내려다보일 정도로 전망이 좋다. 북쪽에 있는 정령치(1,172m)와 남쪽에 있는 성삼재(1,090m) 고개에는 도로가 나 있어, 두 고갯마루를 잇는 당일 산행을 할 수 있다. 만복대 정상에서 지나온 능선을 바라보니 정말 환상적인 모습... 산능선의 곡선미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은빛 억새의 모습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자료를 뒤지다 보니 만복대를 주제로 한 시가 있다. 작가는 누군지 모르겠고... 아마도 이 작가분은 겨울에 만복대에 올랐는 모양인데... 만복대에서... 눈꽃으로 부서지는 그대 눈꽃으로 피어나는 그대 눈꽃이나 볼까하여 겨울 만복대에 올랐다가 눈꽃은 대충보고 眞眞이 생각만 실컷하고 내려오니 저무는 섬진강이 눈물 되어 흐르네. 이제 만복대에서 정령치로 방향을 잡아 이동하여야 한다. 산불방지 감시탑을 지나 능선을 넘으니 정령치휴게소의 모습이 보인다. 정령치 휴게소에서.. □ 정령치 정령치는 주천면 고기리에서 산내면 달궁부락으로 넘어가는 지리산 줄기의 고개로 황령치와 함께 마한의 별궁을 지키던 중요한 곳이었다 하는데 이곳은 고개 마루가 운동장 만큼이나 넓어 이에 대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마한의 별궁을 방어하기 위해 황령치와 정령치에 성을 쌓고 정씨성을 가진 장군과 황씨성을 가진 두 장군이 각각 지키고 있었는데 정 장군이 지키던 이 정령치에 마을을 만들고자 그의 신통력을 써서 손바닥으로 고갯마루를 쳐서 주위의 높은 산들을 뒤로 물러나게 하였다. 이리하여 산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 앉기 시작하는데 운봉에 사는 어느 아낙이 저녁을 짓고 있는데 천지를 울리는 천둥소리와 함께 지축이 흔들리므로 괴이하게 여겨 소리나는 쪽을 바라보니 정령치쪽 높은 산들이 탕탕 내리치는 소리에 맞추어 빙빙 돌면서 조금씩 움직이므로 무심결에, 어메 산이 가네이! 하고 외치면서 들고 있던 부지깽이로 부엌문턱을 치니 그 순간 정 장군이 내리치는 소리에 맞춰 움직이던 산들이 그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아 다시는 움직이지 않아 고갯마루가 넓어지려다 말았다 한다. 6.25사변 전 만해도 정 장군의 손바닥이 찍힌 바위가 달궁마을 앞까지 굴러 내려왔었다 하는데 지금은 그 흔적을 찾아 볼 수 없고 다만 정 장군이 쌓았다는 산성만이 고리봉 능선에 약 20m정도 남아 있어 옛날 전설(마한의 별궁설)을 전해주고 있다. 현재는 이 고개를 정령치(鄭嶺峙)라 하지 않고 정령치(正嶺峙)라 고쳐 부르고 있다. 고리봉 가는 능선에서 바라본 정령치 휴게소의 모습. 그 너머 산불방지감시탑의 모습도 보인다. □ 고리봉 고리봉은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동악산과 마주보고 있다. 고리봉과 동악산은 섬진강으로 나뉘어 있지만, 두 산 사이의 강 7km 구간은 '솔곡' 이란 골짜기 이름으로 불린다. 솔곡에는 8개 명소가 있다. 우암탄, 청계상류, 자만연, 석탄, 청계중류, 청계하류, 임석탄 등 이름이 붙은 7개 명소에 우암탄과 청게상류 사이에 '살베' 라는 지명이 하나 더해진다. 골산(骨山)의 전형을 보여주는 고리봉의 이름은 소금배를 묶어두었던 '고리(還)' 에서 유래한다. 지금 남원 시내를 관 통하며 흘러내리는 요천은 남원 관광단지 앞 물줄기만 둑을 쌓아 뱃놀이가 가능하지만,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하동을 출발한 소금배가 섬진강에 이어 요천 물줄기를 거슬러 남원성 동쪽 오수정(참나무정)까지 올라와 닻을 내렸다고 한다. 당시 소금배가 중간 정박지로 금지평원에 머물기 위해 배 끈을 묶어두었던 쇠고리를 바로 고리봉 동쪽 절벽에 박아 놓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소금배와 얽힌 전설이 전하는 고리봉은 조망도 좋지만 산세가 뛰어난 산이다. 동서 양쪽 사면은 거대한 바위 병풍을 연상케 할 만큼 웅장한 산세를 과시하고, 능선은 소나무가 울창한 가운데 부드러운 육산과 아기자기한 암릉이 번갈아 이어져 산행의 즐거움까지 더해진다. 고기삼거리를 가르키는 이정표... 고기삼거리에 내려서는 60번 지방도를 따라 이동해야 한다. 고기삼거리로 내려서자 다리가 보이고 뒷편에 화장실이 있다. 여기서 간단하게 버릴 것은 버리고 이제부터는 지방도를 따라 약 30분 정도 노치부락을 향하여 가야한다. 다리 아래 마을에 감나무가 주렁주렁... 여기서도 또 한번 알바를 하고 말았다. 60번 지방도를 따라 운봉방향으로 가야하는데 그 반대로 간 것... 지도를 보고 확인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승용차가 서더니 친절하게 노치부락 가는 길을 다시 한번 확인해준다. 감솨!!! 대간길 산행자료를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꼼꼼하게 챙겨야겠다고 반성하는 순간ㅠㅠ 60번 지방도를 따라 운봉방향으로 약20여분 내려가다 보면 "들꽃향기"라는 펜션이 나오고 약5분 정도 더 내려가면 덕치마을버스정류장이 나온다. 이 삼거리에서 왼쪽길로 접어들어 마을로 들어가야 한다. 노치부락임을 가르키는 표지석이 있다. 덕치마을보건진료소앞을 지나 계속 진행한다. 노치샘에서.. 수량이 매우 많다. 물맛이 좋다고 소문이 난 곳이라는데... 대간길은 노치샘 옆길로 진행한다. 노치샘을 지나 노치마을을 벗어나 수정봉가는 길에 만난 울창한 송림... 소나무가 엄청 오래되었나보다. 두 사람이 양팔을 벌려 겨우 안을 수 있을 정도로 엄청 굵다. 노치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송림에서 사진 한장 남겼다. 수정봉. 딱히 수정봉임을 나타내는 표지석이 없이 누군가가 이렇게 수정봉임을 표시해두었다. 뒤 이어 이 길을 지나갈 이름모를 산객들을 위하여 우리 산방 백두대간리본을 한장 남겨놓는다. 여원재 가는 길... 임도가 두번 나타나고 두번 째 임도에서 왼편으로 간다. 두번째 임도에는 초라하게 주지사 안내표지가 있다. 여원재에 도착했다. "운성대장군" 석상이 우리를 맞는다. □ 여원재(여원치) 남원에서 24번 국도를 타고 운봉읍으로 가다보면 여원치(여원재)를 넘는다. 해발 477m의 여원치는 그 이름의 유래가 깊다. 교통이 불편하던 옛날, 남원과 운봉, 함양을 오가는 길손이라면 반드시 거쳐야했던 이 고개의 유래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극심하던 때 이곳 운봉현까지 왜구의 침략이 잦았다. 고개마루 주변 주막집을 들락거리던 왜구무리들은 주모에게 손찌검을 했다. 이에 주모는 날이 시퍼런 칼로 왜구의 손을 탄 왼쪽 가슴을 잘라내고 자결한다. 한편으로 왜구의 침략을 물리치기 위해 운봉에 당도한 이성계는 꿈자리에서 백발이 성성한 노파로부터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 날짜와 전략을 계시받아 전투에서 대승을 거둔다. 이성계는 꿈에 나타난 이 노파가 왜구의 손찌검으로부터 몸을 지키고 자결한 주모의 원신 이라고 믿고, 고개마루 암벽에 여상을 암각한 다음 주모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사당을 지어 여원이라고 불렀다. 이런 사연으로 여원치라는 명칭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현지 주민들은 이 여원치를 연재라고도 부르는데 이는 필시 여원의 이름에서 파생된 것이 라고 짐작된다. 이렇듯 이 고개 이름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 됐으며 오늘날까지도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다. 여원재에 있는 장동마을 버스정류장. 언제 다시 올지는 장담할 수 없지만 무사히 제2구간 산행을 마치게 도와준 산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다음 3구간은 이곳 여원재에서 올라 복성이재까지 진행한다. 도상거리 약 21km. 다음에는 보다 많은 산우님들이 함께 하여 대간길을 더욱 풍요롭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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