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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백두대간(북진)후기

[스크랩] 백두대간 제4구간(복성이재-봉화산-월경산-백운산-영취산) 산행을 마치고...

■ 산행일 : 2007. 1. 27. - 28.(무박2일)
■ 산행코스
   복성이재-(4.11)-봉화산(919.8m)-(7.73)-중재-(1.8)-중고개재-(2.55)-백운산(1278.6m)-(3.45)-영취산(1075.6m)// 19.64km
   ▶대간구간: 복성이재-영취산// 19.64km
   ▷접속구간: 성리마을-복성이재// 1.0km
   ▷접속구간: 영취산-무령고개// 1.0km
■ 함께 하신 산우님
   산행대장 메트로칸님, 여행강타님, 랑랑공주님, 정륜님, 설백호님, 신용종님, 다니엘님, 매봉산님 너울 이상 9명
■ 이동경로 및 산행코스
  ㅇ 2007. 1. 27.(토) 23:15 : 안양 농수산물 시장 출발
     - 북수원IC - 경부고속도로 -  대진고속도로 - 88고속도로 - 지리산IC - 남원 아영면 - 성리마을 - 복성이재
  ㅇ 2007. 1. 28.(일) 03:25 : 전남 남원시 아영면 성리마을 복성이재 초입 도착
  ㅇ 04:00 : 도보로 복성이재 도착(간단한 식사)
  ㅇ 04:30 : 복성이재 출발 산행시작
    - 치재
    - 꼬부랑재
  ㅇ 05:30 : 다리재
  ㅇ 05:40 : 봉화산(919.8m)
  ㅇ 06:16 임도 공터 
       -870봉 
  ㅇ 06:40 바위전망대 
  ㅇ 06:50 휴식후 출발 
       -944봉 
  ㅇ 07:35 광대치 
  ㅇ 07:50 철조망지대 
  ㅇ 09:30 쉼터 
  ㅇ 09:50 월경산(981.9m) 지남(월경산 정상은 대간길이 아님)
  ㅇ 11:10 중재
  ㅇ 12:00 : 식사 후 출발
       -695봉 
       -755.3봉 
  ㅇ 12:50 중고개재 
  ㅇ 13:50 백운산(1278.6m) 
  ㅇ 14:15 암봉 
        -1066봉 
  ㅇ 14:50 갈림길(좌-무령고개 700m, 직진-영취산 400m) 
  ㅇ 15:15 영취산(1075.6m) 
     .........접속구간(금남호남정맥 시작-무령고개) 
  ㅇ 15:30 무령고개 
  ㅇ 16:00 : 눈으로 무령고개주차장에 차량진입이 곤란하여 성리마을 주변 도로변 버스로 이동 (산행종료) 
  ㅇ 20:20 : 안양 농수산물시장 주변 먹자골목에서 식사 후 해산
  이상 산행시간 : 10시간 00분(후미 기준, 식사시간 제외, 무령고개주차장까지 소요시간)

남원시 아영면 성리마을 복성이재 초입에 도착하다 월요일부터 일기예보에 신경이 쓰였다. 천문학의 발달인가 아니면 슈퍼컴퓨터의 위력인가???? 일기예보는 전혀 틀리지 않고... 안양을 출발하여 대전을 지날 때까지도 보이지 않던 눈이 지리산휴게소에 도착하니 조금씩 눈이 내리는데..... 남원시 아영면 성리마을에 접어들자 눈이 사정없이 내려서 더이상 복성이재로 올라가지를 못한다. 하는 수 없이 복성이재 산행 들머리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차량봉사해주신 이에니님만 남겨둔채... ps) 이에니님!!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백두대간 제4구간(복성이재-영취산) 산행들머리인 복성이재에서.. 성리마을 복성이재 초입에서 도로를 따라 약 20여분 정도 걸어올라가니 오늘의 산행들머리인 복성이재에 도착했다. 한 겨울 눈내리는 밤에 일단의 산객들의 발자욱 소리에 도로변 농가에서 키우는 동네개들이 무심코 짓어대는 소리가 새벽의 정적을 깨운다. 서둘러 호호님이 정성껏 보내주신 떡과 정륜님이 준비해오신 누룽지를 끓여 먹고 산행준비를 마쳤다.

백두대간 제4구간 산행에 참여하신 산우님들의 출발전 기념사진 함께 하신 산우님들이 복성이재 정상부 도로를 점거하고 준비한 대간현수막 앞에 모였다. 정륜님과 매봉산님께서 처음 대간에 합류하였다. 다소 조촐하지만 마지막 구간까지 쭉 이어지기를 기대하며.... 복성이재 아막산성에서 계속 키를 낮춘 백두대간은 복성이재라는 고개를 지나게 되는데, 오른쪽으로 마을 하나가 내려다보인다. ‘흥부마을'로 널리 알려진 남원시 아영면 성리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난 것은, 이곳을 흥부마을로 부르면 펄쩍 뛰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남원시 동면 성산리 또한 흥부마을로 불리는 까닭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짐작대로, 몇 년 전에는 원조 경쟁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 두 마을의 다툼은 아주 절묘한 방식으로 마무리를 한다. 심판은 경희대학교 학술조사단. ’93년에 남원시의 의뢰로 경희대 민속학 연구소에서 ‘흥부전’을 고증한 결과, 동면의 성산리는 흥부가 태어난 곳이고, 아영면의 성리는 놀부에게 쫓겨난 흥부가 발복을 한 곳이더란다. 둘 다 흥부마을이라 불러도 안될 게 없는 셈이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흥부가 태어난 곳은 놀부마을로 부르고 성리만을 흥부마을로 불러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연유야 어찌됐건 대놓고 놀부라고 부르는 데도 언짢아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까. [출처 : BUDDHAPIA]

봉화산 오르는 길에 한껏 피어오른 설화와 함께한 랑랑공주님과 설백호님 전날 아마도 많은 눈이 내렸나 보다. 봉화산 대간길은 말그대로 눈꽃세상이었다. 원래 봄에는 철쭉으로 유명한 곳인데 어김없이 찾은 산객들에게 철쭉대신 화려한 눈꽃을 보여주었다. 선두에 가다 화려하게 피어난 눈꽃에 매료되어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는데 그래도 한장 건졌다 ㅎㅎ

봉화산 정상에서.. 복성이재를 출발한 지 약 1시간이 지나 봉화산 정상에 도착했다. 철쭉과 더불어 봉화산 정상은 조망이 좋기로 유명한 곳인데 아직 이른 시간이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정상석은 절묘하게도 한반도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정상석 뒷면에는 우리 지도와 백두대간 능선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봉화산(920m) 전북 남원시와 장수군,경남 함양군의 경계에 솟은 봉화산(해발920m)은 철쭉이 곱기로 이름난 산이다. 뒤늦게 시작된 봄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속도가 너무도 빨라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엊그젠가 싶더니 벌써 종착역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매화, 벚꽃, 배꽃, 진달래로 이어지는 봄꽃 행진의 끝은 철쭉이다. 철쭉은 단연 으뜸이다. 하나 하나 뜯어 보면 그리 잘 난 것 없다 싶다가도 떼 지어 피고 지는 기세를 앞 두고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누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개화 시기도 한 달은 너끈하다. 전남 장흥 제암산과 보성 일림산에서 시작, 어기차게 북상중인 철쭉은 경남 산청 황매산과 전북 남원 봉화산, 바래봉을 거쳐 강원 정선 두위봉과 태백산까지 불태운 뒤 빛의 축제를 마무리한다. 5월의 산하를 물들이는 철쭉은 지금 전북 남원에서 절정이다. 백두대간 끝자락께인 봉화산에서, 지리산의 새끼봉인 바래봉에서, 붉은 빛을 토해내 며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전국 최대 규모의 철쭉 군락지인 바래봉(1,165m)의 명성이 너무 커서일까. 봉화산(919m) 철쭉은 덜 알려진 편이다. 하지만 봉화산도 화려함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규모는 작지만 산 능선을 따라 불을 지른다. 산불이 아니라 꽃불이다. 이몽룡의 가슴에 불을 지폈던 춘향의 치마가 저보다 붉었을까. 아찔하도록 현기증이 난다. 봉화산 철쭉 군락지는 치재라는 능선 일대에 몰려있다. 해발 500m안팎에 불과한 나지막한 곳이지만 엄연한 백두대간의 일부이다. 지리산 노고단, 성삼재, 정령치를 지나 수정봉, 여원재, 새맥이재, 복성이재를 거쳐 봉화산으로 내닫는 길목에 있다. 사람들의 발길을 거부해 오던 이 일대의 철쭉을 발견한 것도 백두대간 종주꾼들이었다. 10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백두대간 자락이라고 해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제 봉화산 철쭉 군락지를 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남원시 아영읍에는 능선입구까지 차량이 오를 수 있는 길이 나 있는 덕이다. 꽃불 속으로 들어 간다. 철쭉나무의 높이가 평균 2m이다. 철쭉사이로 걷는 것이 아니라 철쭉속으로 걷는다. 이 착시 현상 속에서 10분쯤 걸으면 치재로 오르는 길이다. 정상 부근에 제법 많은 등산객이 몰려 있는데, 등산로에는 사람 구경 하기 힘들다. 꽃 속에 파묻혀 있으니 당연하다. 가끔씩 꽃 사이로 사람들의 머리가 보였다가 사라진다. 정상에 오르면 상춘객도 등산객도 모두 숨바꼭질 놀이에 빠져든다. 정상에서 보는 철쭉 군락지는 말 그대로 장관이다. 만개한 철쭉이 능선을 가득 메웠다. 빈 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 현란함에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감탄사조차 내뱉기 힘들다. 이런 풍광을 그냥 놔둘 리 없다. 전국에서 몰려든 사진 작가들의 셔터 소리가 봄을 아쉬워 한다. 전망도 빼어나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 온다. 보다 나은 전망을 원한다면 봉화산 정상으로 향하자. 중간 중간에 참나무 군락과 억새 평야가 반긴다. 1시간 30분 가량 걸리는 코스지만 지루할 겨를이 없다. 봉화산 정상에 서면 남으로 지리산 천왕봉, 북으로 백운산을 마주한다. 그 어디메쯤 마지막 봄의 장엄이 있다. [출처 : 한국일보]

봉화산 하산길 철쭉나무와 함께한 산우님들 어둠 속이라 그 모습이 정확히 들어오지는 않지만 봉화산 하산길에는 온통 철쭉세상이다. 뒤에서 정륜님이 지난 봄 철쭉산행을 봉화산으로 오셨다며 그 모습을 전한다. 어쩌면 올해 5월경에는 다시 와야 할 것 같다. 가봐야 하는 산은 많고 시간은 없고 ㅎㅎ

설산에서 아침해를 보다 봉화산에서 내려와 월경산을 향해 걸음을 재촉하는데 어느 산우가 말했다. 서둘러야 월경산에서 일출을 본다고.... 눈이 내린 대간능선길에는 문득 문득 앞서 이 구간을 다녀간 산님들의 발자욱을 지워버렸다. 결국 바위전망대를 지나 광대치 직전 944봉 오름길에서 아침해를 만났다. 멀리 아마 경남 함평방향인 것 같은데... 마을도 보인다.

광대치 봉화산에서 약 2시간 후 광대치에 도착해서 잠시 숨을 돌린다.

철조망 지대 광대치를 출발해서 약 10여분 진행하자 느닷없이 철조망이 나타난다. 대간길은 진행방향에서 좌측 백운산방향으로 진행한다.

월경산을 지나 쉼터에서의 눈싸움(?) 광대치를 출발하여 2시간을 더 진행해서야 월경산을 지난다. 월경산 정상은 대간길이 아니다. 대간길은 월경산 정상을 약20여미터 남겨두고 옆으로 나 있다. 월경산을 지나자 마자 제법 능선에 눈이 많이 쌓여 있다. 사진을 찍으려고 눈위에 누워버린 여 산우님들께 산행대장이신 메트로칸님이 장난스럽게 눈을 뿌렸다. ㅎㅎ

중재 복성이재에서 산행을 시작한지 약 6시간 30분이 지나 중재에 도착하였다.(12.1km) 시간이 오전 11시. 이곳에서 이른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중재 광대치에서 월경산(982m)과 산사태 지역을 지나면 머지않아 농로가 뚜렷한 중재에 도착한다. 오른쪽 길 따라 내려가면 작은 계곡과 하루 3번 함양行 버스가 들어오는 두메 산골인 중기마을이 나오며, 고개 왼쪽으로는 장수 방향의 지지리 골로 빠진다.

산행로 옆에 작은 공간이 있고 의자가 마련되어 있는 쉼터가 있다. 눈이 많이 왔지만 일기예보와는 달리 그리 바람이 불지 않는 포근한 날씨 덕을 톡톡히 본다. 랑랑공주님이 준비해오신 부대찌게도 끓이고 라면도 끓이고.... 부대찌게와 라면에는 여행강타님이 가져오신 만두도 넣고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정작 당신은 먹지도 않으면서 산우들을 위해 음청 지고 예까지 왔다.

지친 산객들에게 길잡이를 해 줄 평산모 대간리본 식사를 마치고 출발하기 전 이곳을 찾을 이름모를 산객들에게 길잡이를 해줄 우리 평산모 대간리본을 중재에 남긴다. 이번 백두대간을 하면서 저 대간리본의 덕을 얼마나 많이 봤는지... 특히 오늘 처럼 대간능선 한쪽에서 눈을 밀어올려 등산로에 쌓여 사람 발자국이 사라지고 거의 선두에서는 무릎까지 빠지는 눈 속을 러셀해서 전진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저 대간리본이 톡톡히 길잡이를 해주었다.

중고개재 중재를 출발하여 695봉과 755.3봉을 넘어 약 1시간여 만에 중고개재에 도착했다. 이정표 표기상으로는 이곳에 중재라고 되어 있지만 각종 산행후기에서는 이곳을 중고개재라고 부르고 앞서 중치를 중재라고 부르고 있다. 이정표 옆에 음식점 광고판에 중고개재라고 씌여 있다.

백운산 오르기 전 바위전망대에서 바라본 지나온 대간능선 모습 중고개재에서 나즈막한 봉우리를 서너개 넘고나면 본격적으로 백운산 된비알이 시작된다. 약 50분여를 힘겹게 오르니 조망이 확트인 곳이 나타난다. 거의 백운산 정상에 다 오른듯 하다. 하얀 색으로 채색한 지나온 대간능선의 모습이 압권이다.

백운산 정상 직전 이정표 지나온 대간 능선을 되돌아본 후 약 5분 오르니 백운산 정상 직전 이정표가 나타난다. 백운산만 산행하는 사람들이 하산할 하산길을 가르키고 있다. 약 4.2km

백운산 정상석 백운산 정상에 서 있는 정상석의 모습. 백두대간 마루금에 우뚝 서 있는 1200m가 넘는 산의 정상석 치고 너무 자그마하고 초라하기만 한데... 백운산 - 안명수 글 미끼골 묵계암 지나 가파른 암벽길 전북 경남 경계선 그림 같은 삼각산 상련대(上蓮臺) 단애 위 암자 백운산 명승지다 학승(學僧) 같은 중년 스님 경내를 거닐다가 저 멀리 지리산에 눈길을 멈추었다 천왕봉 봄빛에 겨워 가부좌를 틀었다 중봉에 올라서니 고도감(高度感) 대단하다 정상 능선 뒤로 두고 백운사로 향하다. 하산길 거대한 협곡 물소리 요란하다

백운산 정상에 있는 조망안내도 초라한 정상석을 대신함인가??? 백운산 조망안내도가 준비되어 있다. 날씨만 좋으면 이곳에서는 지리산 주능선과 낙남정맥 장안산 그리고 남덕유산 등의 조망이 다 보이는 곳이다. ▲ 백운산(白雲山山 1278.6m) 백운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많다.그 중에서"흰구름 산"이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하는 산이 바로 함양의 백운이다. 높이도 1,000m가 훨씬 넘는 준봉인데다 산정에서의 조망도 으뜸이다. 남도의 내노라하는 명산들이 동서남북 어떤 방향에서든 거칠 것 없이 한눈에 들어온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남쪽에 하늘금을 그은 지리산의 파노라마는 그리움의 경지를 넘어 차라리 연민이다. 반야봉의 자태는 너무 뚜렷해 민망스럽기까지 하다. 북쪽 끄트머리에는 넉넉한 덕유산이 태평스레 앉아 있고 그 너머에 황석, 기망, 월봉산이 줄기를 뻗대고 있다. 금원 기백도 가까이 보이고 동북 방향 멀리로는 수도,가야,황매산도 가물거린다. 양쪽날개인양 백운산과 맥을 같이한 동쪽의 갓걸이산(괘관산)과 가을 억새가 멋진 장수군의 장안산이 서쪽에서 마주보고 있다. 이렇듯 백운산은 명산에 둘러싸여 명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 지방 최고의 진산이다. 겹겹이 둘러싼 능파들 사이사이로 흰구름이 부리는 조화는 백운산만이 연출해 낼 수 있는 활동사진. 산세 또한 전형적인 육산이기에 사계절 내내 산행이 가능한 것이 이 산의 매력이다. 부산에서 백운산을 찾을 경우 승용차를 이용한 원점회귀산행과 대중교통을 이용한 종단산행 2가지 코스가 있다. 원점회귀산행은 미끼골~상련대~정상~큰골~백운암으로 내려오는 코스로 약 6시간이 소요되며 종단산행은 중재~정상~미끼골로 이어지는 코스로 약 5시간이 걸린다. 상련대를 거치는 코스가 일반적이긴 해도 상련대까지의 도로길과 상련대에서 정상까지의 급경사길이 상당한 체력소모를 요구한다. 따라서 백운산의 겉과 속을 함께 접할 수 있는"중재~정상"길을 소개한다. 산행들머리는 함양군 백전면 운산리 중기부락이다. 함양에서 하루 세 번 운행하는 노선버스는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택시를 이용하는 것이 되레 마음이 편하다. 중기마을 입구에서 하차하여 서쪽으로 나 있는 산간도로로 접어든다. 여기서 계곡을 가로지른 다리를 지나 40분 가량 걸어 올라가면 중재에 닿는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30여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었지만 지금은 마을의 흔적이 거의 없고 산비탈에 빈집 한 채만 남아 있을 뿐이다. 중재는 근래들어 백두대간 구간종주의 주요 지점으로 널리 알려진 고개이다. 백운산은 고개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올라선다. 중재에서 정상까지는 약 2시간 거리. 길목마다 백두대간 표시기가 무수히 달려 있어 그대로 따르면 길잃을 염려는 없다. 전라.경상을 가르는 백운산 서북릉 길은 대체로 완만하다. 중재에서 40분 정도 오르면 산행 들머리인 중기마을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이곳이 중고개재다. 고개넘어 서쪽의 지지리부락은 전북 장수군의 가장 오지마을이다. 중고개재에서부터 등로는 서서히 고도를 올리다가 정상 직전의 오르막에서 급경사를 이룬다.무덤 2기가 있는 이곳을 정상으로 착각하기 쉽다. 무덤에서 정상은 북쪽으로 왕복 10분거리.헬기장을 지나면 곧 백운산 정상이고 흰 팻말이 서 있다. 하산을 위해 무덤으로 되돌아와서 동쪽으로 내려선다. 상봉에서 10분이면 도착되는 중봉은 백운산 최고의 전망대다. 중봉과 어깨를 같이한 하봉에는 장터의 흔적이 있으며 이곳에서 40분 거리의 상련대까지는 급경사 내리막이다. 내리막길에서 두번째 만나는 무덤에서 길이 두 갈래다. 진행방향 오른쪽으로 따라야 상련대를 거칠 수 있으며 왼쪽길은 능선으로 해서 묵계암에 이르는 길이다. 미끼골 위쪽에 있는 상련대는 적막이 흐르는 선원이다. 상련대 왼쪽 계단길을 내려서면 바로 산간도로이며 길은 하산을 마감하는 운산리 대방마을까지 이어져 있다. 중간에 비구니 두분이 암자를 지키는 묵계암이 있어 쉬어갈 수 있다. 묵계암은 우리나라 유일의 절마당에 무덤이 있는 곳. 스님은 이곳이 천하 제1의 명당이라고 자랑한다. 길손에게 솔잎차를 대접하는 절 인심이 암자를 가득 채운 한련꽃 향기 만큼 아름답다. 묵계암까지 승용차가 올라오며 함양행 버스가 다니는 대방리까지는 걸어서 약 50분이 걸린다. 버스는 오후 7시40분까지 한 시간 간격으로 다닌다. 함양까지 소요시간은 30분 정도.묵계암에서 택시를 부를 수 있다. 요금은 1만5천원. [부산일보] 1998/08/ 류정자. 산우리산악회 총무/(발췌:한국의 산하)

영취산 가는길에 되돌아본 백운산 원경 지나온 백운산의 모습... 하얀 눈을 뒤집어 쓰고 있다. 영취산을 가기 위해서는 암봉과 1066봉을 넘어야 한다. 암봉가는 길에 되돌아본 백운산의 모습이다.

영취산 가는길에 만난 산죽터널 봉화산에서 백운산가는 길은 온통 철쭉밭이더니 백운산에서 영취산 가는 길에는 산죽터널이다. 키가 크고 울창한 산죽터널이 시야를 가리고 등산로에 삐져나온 잘린 나무가지에 발이 자꾸 걸린다. 산죽밭에서 산우들이 잠시 포즈를 취했다. 산죽 - 글 정삼희 굽이치는 능선이 그리울 땐 꽃도 피우지 못할 서러움 달빛 시린밤 이름 모를 들꽃이 되어 속살 부비다가 장당 옥류 푸른 물에 진달래 산수유 몇 송이로 떠내려와 시가 되고 눈물이 되고.. 한밤 치근대는 비로 내린다.

선바위고개이정표 백운산을 출발한지 약 1시간만에 선바위고개 이정표에 도착했다. 여기서 영취산 까지는 400m, 무령고개는 700m.

영취산 올라가는 등산로에 피어난 설화 온천지에 설화가 피어있다. 선바위고개에서 영취산 정상가는 등산로에 피어 있는 설화 속을 산우들이 지나고 있다. 여기서 영취산 정상까지는 이제 불과 400m

영취산 정상 영취산 정상이다. 오늘 산행의 종점 영취산 정상. 정상 한켠에는 무수이 많은 산객들이 그들의 흔적을 이렇게 남겨놓았다. 여행강타님에게서 평산모 대간리본을 하나 받아 육십령방향으로 가장 오른편에 우리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백두대간 안내도 영취산 정상에는 전라북도 장수군에서 백두대간 안내도를 만들어 놓았다. ■ 영취산(1,076m) 무령고개는 금남호남정맥에 속한다. 영취산에서 갈리어 나간 금남호남정맥은 무령고개, 장안산(長安山, 1,237m)을 거쳐 장수 팔공산(八公山, 1,151m)을 지나 진안 주화산에서 호남정맥 과 금남정맥 두 갈래로 나뉘어 진다. 여기에서 남쪽으로 내달은 호남정맥은 내장, 추월, 무등, 사자산을 거쳐 광양 백운산에서 기세를 다하고, 북으로 뻗은 금남정맥은 대둔, 계룡산 을 거쳐 부여 부소산에서 그 끝을 맺는다.[출처:조선일보사]

다음 제5구간 들머리 모습 다음 구간 영취산-깃대봉-육십령 구간의 들머리를 대간 리본들이 알려주고 있다. 다음 구간은 약12km정도의 평범한 구간이다. 제6구간을 접속구간 등을 고려하여 육십령에서 동업령까지 진행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당일로 진행할 계획이다.

영취산 정상 정상에서 함께한 산우님들이 산행을 마무리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무릎까지 빠지는 대간 능선을 10시간 이상이나 헤쳐온 후라 피곤 할 법도 한데... 얼굴에는 무언가 이루워낸 자신감들로 가득 차 있다. 이곳은 행정구역 상으로는 전라북도 장수군이며 무령고개로 하산하면 충절의 여인 논개 생가가 있는 주촌리이다. 논개의 고향 장수군 빗물이 금강과 섬진강으로 갈리는 수분재(水分嶺 539m)가 있는 장수는 사과가 유명하고, '의암사'(義巖祠)를 찾아가면 임진왜란 당시 최대의 격전 으로 꼽히는 진주성 싸움에서 이제 갓 피기 시작한 스무살 꽃다운 나이에 순절한 의기(義妓) 논개의 영정과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잘 알다시피, '주논개(朱論介 1574~1593)는 장수 태생으로 천품이 영리하고 자태가 아름다웠으며 일찍이 마을 훈장이었던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와 함께 살다가, 작은 아버지가 돈을 받고 김풍헌의 백치 아들에게 민며느리로 팔아 넘겼다. 이 사실을 안 논개 모녀가 완강하게 반대를 하자 김풍헌은 장수현감에게 소장을 올렸고, 우여곡절 끝에 방면이 된 모녀는 관아에 머물면서 당시 최경회(崔慶會) 장수현감과 논개는 부부의 연을 맺게 되었다고 한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장수현감 최경회는 이듬해 사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로 임명되어 진주(晋州)로 부임할 때 논개 도 간청하여 따라갔다. 그러나 선조 26년(1593) 6월 29일, 치열한 전투 끝에 수만명의 군관민이 전사 또는 자결, 학살당하며 성(城)이 함락되었고, 평생을 의지하려던 최경회 부군(夫君) 역시 전사하였다. 이어 칠월칠석날 왜적들이 촉석루에서 승전 술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논개는 기생으로 왜장을 유인하여 촉석루 아래 바위 절벽에서 그를 단단히 껴안고 (열 손가락마다 반지를 끼웠다고 함) 넘실대는 남강(南江) 푸른 물 속으로 몸을 던져 함께 죽었다. 훗날 그녀의 의로운 정신을 기리어 그 바위를 의암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최경회와 논개의 묘는 배두대간 육십령 동남쪽으로 십리쯤 떨어진 함양 서상면 금당리 방지 마을 뒷산에 있는데 이들 부부의 묘가 여기에 있게 된 사연은 이렇다. 진주성이 함락되자 장수 지역 의병들은 남강 하류를 수색해 창원 지수목에서 최경회, 그리고 왜장을 껴 안은 채로 죽은 논개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들은 부부의 시신을 고향으로 옮겨 주씨 문중과 장사지낼 것을 상의했지만, 왜적의 추적과 보복이 두려운 주씨 문중은 이를 거절하였다. 또 기생이기 때문에 거절했다는 말도 있다. 결국 이들은 백두대간 동쪽의 삼남대로변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잡아 장사 지내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의병의 후손들에 의하여 전설처럼 내려오던 이 묘는 20여년 전인 1975년 세상에 알려졌다, 순절한 후 382년만의 일이다. [출처:백두대간한마당, 조선일보]

무령고개로 하산하는 길에... 영취산 정상에서 무령고개 주차장까지는 약 400m. 하산하는 길에 장수군에서 설치한 듯한 나무계단에서 다시 한번 자리를 함께 하였다. 눈보라가 거세게 부는 것이 내심 귀경길이 걱정된다. 버스가 무령고개까지 올라오지 못해 우리는 다시 무령고개에서 버스가 있는 고개초입까지 도보로 걸어가서 오늘 산행을 마무리 하였다. ■ 무룡고개 무룡고개는 백두대간에서 갈라지는 금남호남정맥이 막 시작하는 용머리 부분을 타고 넘는다. 무룡고개에 서서 남쪽 하늘을 바라보면, 첩첩이 겹쳐지는 산과 산 뒤에서 펼쳐지는 지리산 연봉은 그대로 하늘벽이다. 붉은 노을에도 늘 검푸른 모습, 그 장엄한 풍광은 그 너머에 신선계가 있다는 말을 선선히 믿게 하기에 충분하다. 왼쪽으로는 그 지리산을 향해 달려가는 백두대간의 넉넉한 행진이 수억겁의 세월을 품은 채 오늘도 계속된다. 백운산 중재 월경산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능선 맞은편 금남호남정맥의 첫머리 장안산의 능선은 또 얼마나 호쾌한가. ‘춤추는 용’이란 뜻을 가진 무룡(舞龍)은 능선과 계곡을 번갈아 타며 고개를 오르는 길을 이야기하는 게 아닐 것이다. <장수군지>는 장안산을 백두대간의 8대 종산이자 지리산에 앞서는 호남의 진산이라고 적고 있다. 금남호남정맥이 시작되는 산을 영취산이라고 부르며 백두대간의 봉우리로 여기고, 장안산을 영취산에서 금남호남정맥으로 맥을 잇는 산으로 떼어내는 이들이 있지만 이는 잘못이라 한다. 고개를 기준으로 산을 가르는 관습이 빚어낸 오류일 것이다. 영취산은 장안산의 또다른 이름일 뿐이다. 용은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금남호남정맥을 일컫는 말이라 한다. [출처 : 백두대간한마당] 여기서 애틋한 사랑이야기 하나 백두대간과 장안산이 만들어낸 길디긴 지지계곡은 한국전쟁이 일어나기도 전에 마을을 소개시켰을 정도로 빨치산들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그 계곡에 여성 빨치산과 토벌대로 나선 국방군 대위의 애틋한 사랑이 전한다. 51년이 끝나가는 12월, 토벌대로 나선 백(白)야전전투사령부 26연대 선봉 중대장인 김 대위는 장안산을 포위하고 있었다. 곱게 쪽진 여인의 머리에 난 가리마 같은 무룡고개를 오르는 옛길에서 김 대위는 오양수라는 여성 빨치산을 만나게 된다. 김 대위 나이 24살이었고 오씨는 20살 꽃다운 나이였다. 오씨는 오랜 도피생활 끝에 선을 놓치고 낙오한 채 눈밭에 쓰러져 있다가 김 대위에게 발견됐다. 김 대위는 오씨를 안아 일으키는 순간 전율을 느꼈다고 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늘 그렇듯이 이들의 사랑도 그렇게 운명적으로 찾아왔다. 씻지 못한 얼굴, 다 찢어진 옷, 동상에 걸려 퉁퉁 부어 오른 손발…. 여성으로 보기 어려운 몰골이지만 김 대위는 직녀를 만난 견우였다. 김 대위는 오씨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며 부하들에게도 오씨를 자신의 아내로 대접할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결국 오씨도 김 대위의 마음을 받아들였다. 김 대위는 오씨가 건강을 회복하자 군인가족증을 만들어주고 목포에 있는 자신의 고향집으로 보냈다. 그러나 김 대위는 방첩대에 체포된다. 빨치산을 빼돌린 것이 죄목이다. 김 대위의 사상을 의심한 방첩대의 심문은 지독했다. 시부모가 될 어른들을 모시던 오씨 역시 체포됐다. [출처 : 백두대간한마당]

산행후기를 마치며... 이번 백두대간 제4구간.... 각종 산행기를 뒤져보니 너무나 아름다운 그리고 꼭 가봐야 하는 구간이었는데 작년 12월부터 이런 저런 이유로 연기되어 2개월만에 마무리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2개월여 동안 산행을 준비하고 추진해온 매트로칸 산행대장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함께 하지 못했지만 정성을 담아 보내주신 호호님 등 산우님들께도 감사드리고 또한 차량봉사해주신 이에니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번 복성이재-영취산 구간은 이전 타 구간들과는 달리 봉화산, 월경산, 백운산, 영취산 등 4개 산을 중심으로 대간등산로가 뚜렷하고 대간 리본 들이 곳곳에 있어 조금만 주의하면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 구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도상거리 약 20km의 산행거리와 봉화산까지 낮은 고도를 유지해오던 대간마루금이 이 구간 백운산구간부터 고도를 높여가는 구간이었고, 전날 내린 눈을 세찬 바람이 대간능선으로 밀어 올려 능선길은 무릎까지 빠지고 일부 구간은 러셀을 해서 진행해야 하는 나름대로 어려운 구간 이었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산행시간 10시간만에 완주한 산우님들께 다시 한번 박수를 보냅니다. 아무쪼록 이땅의 산과 그리고 그곳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대간길이 평산모에서 계속 이어질 수 있기를 기원하며 후기를 마칩니다.

출처 : 평촌산사랑모임
글쓴이 : 너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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