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 : 2010. 10. 10.(일)
■ 산행코스
▲▲ 내변산탐방지원센터-(2.2)-직소폭포-(1.5)-재백이고개-(0.8)-관음봉삼거리-(1.3)-내소사-(0.5)-내소사탐방지원센터 // 약 6.3km
▲ 산행시간: 약 4시간 9분(휴식, 식사시간 포함)
■ 이동경로 및 산행코스
[10/10(일)]
○ 06:40 : 안양출발
○ 10:23 : 내변산탐방지원센터 입구 주차장 도착
- 서해안고속도로 부안 I.C. - 부안읍 - 30번 국도 - 변산
○ 10:30 : 내변산탐방지원센터 출발 산행시작
○ 10:39 : 실상사지
○ 10:47 : 봉래구곡안내표지
○ 10:51 : 자연보호헌장탑
○ 10:54 : 산정호수
○ 11:10 - 11:54 : 직소폭포
- 이른 점심식사 후 출발
○ 12:24 : 재백이고개
○ 13:14 : 관음봉삼거리
○ 14:05 - 14:26 : 내소사 입구
- 내소사 관람
○ 14:39 : 내소사탐방지원센터 주차장 도착 산행 종료
(이상 도상거리 약 6.3km, 산행시간 : 4시간 9분, 휴식 및 식사시간 포함)
○ 15:14 - 15:25 : 채석강
○ 16:00 - 18:00 : 새만금방조제
- 저녁식사 후 귀경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
위 시조는 조선 중기 기생의 신분이었지만 대표적인 여류시인인 부안기생 매창의 연시입니다.
그녀가 평생을 두고 사랑했던 촌은 유희경이라는 이를 그리며 지은 시라고 하는군요.
위 시조를 보고 매창에 대한 관심을 키웠던 적이 있습니다.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대상인 유희경이라는 양반에 대한 부러움 때문에 ㅎㅎ
오늘 그녀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전북 부안 직소폭포, 내소사를 찾아 내변산 산행길을 떠납니다.
♣ 지독한 사랑.. 매창과 촌은 이야기 1♣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시대 대표적인 여류 시인으로 평가받는 매창은 1573년(선조 6년) 부안현의 아전이던 이탕종(李湯從)의 서녀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해가 계유년이었기에 계생(癸生), 또는 계랑(癸娘)이라 하였으며, 향금(香今)이라는 이름도 있었다.
계생은 아버지에게서 한문을 배웠으며, 시문과 거문고를 익히며 기생이 되었는데, 이로 보아 어머니가 기생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기생이 되어 그는 천향(天香)이라는 자(字)와 매창(梅窓)이라는 호(號)를 갖게 되었다.
매창은 1590년 무렵 부안을 찾아온 시인 촌은 유희경과 만나 사귀었다.
매창도 유희경을 처음 만났을 때 시인으로 이름이 높던 그를 이미 알고 있었던 듯하다. <촌은집>에 이런 기록이 있다.
"그가 젊었을 때 부안에 놀러갔었는데, 그 고을에 계생이라는 이름난 기생이 있었다.
계생은 그가 서울에서 이름난 시인이라는 말을 듣고는 '유희경과 백대붕 가운데 어느 분이십니까?'라고 물었다.
그와 백대붕의 이름이 먼 곳까지도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그때까지 기생을 가까이 하지 않았지만 이 때 비로소 파계하였다.
그리고 서로 풍류로써 즐겼는데 매창도 시를 잘 지어 <매창집>을 남겼다."
40대 중반의 대시인 유희경과의 사랑은 18세의 매창으로 하여금 그의 시세계를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리게 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무렵 그들이 사랑을 주고받은 많은 시들이 전한다.
이 고장 출신의 시인 신석정은 이매창, 유희경, 직소폭포를 가리켜 부안삼절(扶安三絶)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희경이 서울로 돌아가고 이어 임진왜란이 일어나 이들의 재회는 기약이 없게 되었다.
유희경은 전쟁을 맞아 의병을 일으키는 등 바쁜 틈에 매창을 다시 만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진정 마음이 통했던 연인을 떠나보낸 매창은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1607년 유희경을 다시 만난 기록이 있지만 매창은 그와 헤어진 뒤 10여년을 마음의 정을 주는 사람이 없이 유희경을 그리며 살았다.
매창은 부안읍 남쪽에 있는 봉덕리 공동묘지에 그와 동고동락했던 거문고와 함께 묻혔다.
그 뒤 지금까지 사람들은 이곳을 매창이뜸이라고 부른다.
그가 죽은 후 45년 후(1655)에 그의 무덤 앞에 비석이 세워졌고, 그로부터 다시 13년 후에 그가 지은 수 백편의 시들 중 고을 사람들에 의해 전해
외던 시 58편을 부안 고을 아전들이 모아 목판에 새겨 <매창집>을 개암사에서 간행하였다.
당시 세계 어느 나라를 둘러보아도 한 여인의 시집이 이러한 단행본으로 나온 예는 없다.
시집이 나오자 하도 사람들이 이 시집을 찍어달라고 하여 개암사의 재원이 바닥나기도 했다고 전한다.
안양에서 6시 30분이 조금 넘어 출발한 산악회 버스가 10시 20분이 조금 넘어 내변산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산행 들머리가 남여치매표소인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군요!!
아마도 산행을 마치고 채석강을 들러 새만금방조제 일정 등이 있어 짧은 산행코스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내변산탐방지원센터를 지나 넓다란 등산로 주변에도 어느 덧 가을은 와 있습니다.
조금 지나면 이곳에도 울긋불긋 추색이 물 들겠지요!!
산행을 시작한지 10분이 채 못되어 실상사지를 지나게 됩니다.
☞ 실상사는??
1986년 9월 8일 전라북도기념물 제77호로 지정되었다.
실상사는 내변산의 천왕봉과 인장봉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689년(신문왕 9)에 초의선사(草衣禪師)가 창건하였고, 조선시대 양녕대군(讓寧大君)이 중창하였다고 전해진다.
최근에 와서는 원불교 교조 박중빈(朴重彬)이 이 절에서 수련하여 도통하였다고 전해진다.
변산에는 실상, 내소, 선계, 청림 등 4대 사찰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중의 하나이다.
고려시대에 만든 불상과 대장경 등 중요한 유물을 소장하고 있었으나, 1950년 6·25전쟁 때 사찰과 함께 전부 소실되었다.
또 이곳에는 《효령대군원문(孝寧大君願文)》 《고사경(古寫經)》 《고인경(古印經)》 등 수백권의 책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와편 등이 출토되었고, 3기의 석조부도가 있다. 그 중 2기는 종형부도(鐘形浮屠)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6·25전쟁 전에는 대웅전, 나한전(羅漢殿), 산신각(山神閣), 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었다고 하며,
특히 대웅전 안에는 《화엄경소》 등 경판이 보존되어 있었다고 한다.
등산로 한켠에 시게시판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아마도 이곳 변산과 연관이 있겠지요??
저기 보이는 곳이 실제 실상사지인 모양입니다.
넓고 아주 부드러운 산길이 이어집니다.
봉래구곡이라~~
꽤나 유명한 계곡인 모양인데 이정표만 확인하고 그냥 지나칩니다.
자연보호헌장탑을 지나 산정호수변으로 난 등산로에 접어 들었습니다.
저수지인 줄 알았는데 호수라고 하는군요!!
호수변을 따라 가꾸워 놓은 등산로가 아주 낭만적입니다.
산정호수변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어느 덧 가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 두분은 친구분들 같은데 무슨 정담을 나누고 있는 걸까요??
산행을 시작해서 약 40분이 지나 직소폭포에 도착했습니다.
물이 많이 부족해서인지 기대했던 것보다는 조금 급실망 ㅎㅎ
아래 전망대에서 조금 이른 점심식사를 하고 산행을 이어가기로 합니다.
이지역 출신 시인 신석정씨는 이 직소폭포와 매창 그리고 유희경을 가리켜 "부안삼절"이라고 했답니다.
또한 매창 역시 이곳 직소폭포를 자주 찾았다고 하는군요!!
♣ '贈醉客(취한 손님에게 드림)' ♣
- 글 매창
醉客執羅衫(취한 손님이 명주저고리 옷자락을 잡으니)
羅衫隨手裂(손길을 따라 명주저고리 소리를 내며 찢어졌어라)
不惜一羅衫(명주저고리 하나쯤이야 아까울게 없지만)
但恐恩情絶(임이 주신 은정까지도 찢어졌을까 그게 두려워라)
위 오언절구 한시는 매창이 술에 취한 취객에게 쓴 한시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유희경에 대한 사랑이 흠씬 뭍어나지요??
♣ 自恨 ♣
- 글 매창
春冷補寒衣(봄날이 차서 엷은 옷을 꿰매는데)
紗窓日照時(사창에는 햇빛이 비치고 있네)
低頭信手處(머리 숙여 손길 가는 대로 맡긴 채)
珠淚滴針絲(구슬같은 눈물이 실과 바늘 적시누나)
연인을 떠나보내고 난 후 매창이 지은 한시라고 합니다.
그리움을 넘어서 서러움과 한(恨)을 드러내고 있다는군요!!
♣ 懷癸娘 ♣
- 글 유희경
娘家在浪州(그대의 집은 부안에 있고)
我家住京口(나의 집은 서울에 있어)
相思不相見(그리움 사무쳐도 서로 못보고)
腸斷梧桐雨(오동나무에 비뿌릴 젠 애가 끊겨라)
지금이야 3시간이면 서울에서 부안을 갈 수 있지만 그 시절에는 보통 일이 아니었겠지요.
매창을 그리워하는 유희경의 마음도 못지 않았나 봅니다.
직소폭포 전망대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다시 출발합니다.
작은 오르내림도 잠시 한동안 평이한 산림욕장을 연상케하는 부드러운 산길이 이어집니다.
직소폭포를 출발해서 약 30분이 지나 재백이고개에 도착했습니다.
예서는 당연히 내소사 방향으로 진행을 해야겠지요.
제법 너른 바위 전망대가 있습니다. 잠시 자리를 하고 앉아 함께한 산우들과 쉬었다 진행합니다.
맨 위 사진은 재백이고개를 조금 지난 전망대에서 관음봉삼거리로 향하는 암봉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벌써 앞선 산우들이 암봉의 8부능선 쯤 진행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나머지 사진은 암봉의 우회길도 있지만 작은 슬랩으로 암봉을 오르는 모습과 그곳에서 바라본 맞은 편 방면의 모습입니다.
아주 조망이 좋은 곳입니다.
후미에 처져 가다 우연히 이곳에 사시는 여산우 두분을 만나 내소사까지 동행합니다.
이 아름다운 곳을 남정네 서너명이 산행하는 것 보다는 훨씬 보기 좋군요!!
작은 슬랩지대를 함께 오르면서 어느 덧 친구가 되었습니다 ㅎㅎ
놀며 쉬며 가다보니 재백이고개에서 50분이나 지나서 관음봉삼거리에 도착했습니다.
정상적으로 진행한다면 30분이면 충분할 거리인데...
예서 관음봉은 불과 30분도 채 안 걸릴 거리이지만 앞서간 산우들과 합류하기 위해 이곳에서 그냥 내소사로 하산을 시작합니다.
우회길도 있는데 굳이 암릉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우측에 관음봉의 모습이 눈앞에 보입니다. 금방인데...
관음봉삼거리에서 약 51분 후 내소사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앞서 도착한 산우님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잠시 내소사를 둘러보기로 하고 내소사로 향합니다.
우선 눈에 뛰는 것은 이곳의 명물 전나무길입니다.
이곳에서 대장금 촬영도 했나 보군요!!
저 나무가 700년된 당산나무라고 하는데 언뜻 보기에도 연륜이 짐작됩니다.
아주 웅장한 사찰입니다.
사진으로 그 모습을 다 담기조차 힘들군요!!
저 나무는 수령 1000년이 된 당산나무라고 합니다.
☞ 내소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633년(백제 무왕 34) 백제의 승려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창건하여 처음에는 소래사(蘇來寺)라고 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대소래사와 소소래사가 있었는데, 지금 남아 있는 내소사는 소소래사이다.
1633년(조선 인조 11) 청민(淸旻)이 대웅전(大雄殿:보물 291)을 지었는데, 그 건축양식이 매우 정교하고 환상적이어서 가히 조선 중기 사찰건축의
대표적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 후 1865년(고종 2) 관해(觀海)가 중수하고 만허(萬虛)가 보수한 뒤, 1983년 혜산(慧山)이 중창하여 현재의 가람을 이루었다.
이 밖에도 고려동종(高麗銅鐘:보물 277), 영산회괘불탱(靈山會掛佛幀:보물 1268), 3층석탑(전북유형문화재 124), 설선당(說禪堂)과 요사(전북
유형문화재 125) 등 여러 문화재가 있으며, 정문에는 실상사지(實相寺址)에서 이건(移建)한 연래루(蓮來樓)가 있다.
내소사의 유래에 관하여, 일설에는 중국 당(唐)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이 와서 세웠기 때문에 내소(來蘇)라 하였다고도 하나 이는 와전된 것
이며, 원래는 소래사(蘇來寺)였음이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되어 있고, 최자(崔滋)의 《보한집(補閑集)》에도 고려 인종 때
정지상(鄭知常)이 지은 〈제변산소래사(題邊山蘇來寺〉라는 시가 기록되어 있다.
또 이규보(李奎報)의 《남행일기(南行日記)》에도 소래사라 하였는데, 이것이 언제 내소사로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부속암자로는 청련암(靑蓮庵)·지장암(地藏庵)이 있다.
1986년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반경 500m 일원이 문화재보호구역(전북기념물 78)으로 지정되었다.
일주문(一柱門)부터 천왕문(天王門)에 걸쳐 약 600m에 이르는 전나무 숲길이 유명하다.
부안군 진서면 석포리 관음봉(觀音峰:433m) 아래 있는데, 관음봉을 일명 능가산이라고도 하는 까닭에 보통 능가산 내소사로 부르기도 한다
서둘러 내소사를 돌아보고 기다리던 일행들과 합류하여 내소사탐방지원센터로 향합니다.
내소사에서 출발해서 10분이 조금 넘어 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고 이어 대형버스정류장에 도착하여 오늘 산행을 마감합니다.
☞산행을 마치고...[실상사지 가는 길에 만난 으악새]☜ |
오랫만에 산악회 정기산행에 참여했습니다.
비록 짧은 산행코스이었지만 이 만으로도 내변산의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채석강에 가 보았지만 물때를 맞추지 못해서 그냥 발길을 돌린 것이 아쉽기만 합니다.
천년고찰 내소사..
조용한 겨울..
다시 한번 찾고 싶은 그런 곳입니다.
♣ 내소사에서 쓰는 편지 ♣
- 글 김혜선
친구여
오늘은 너에게 내소사 전나무숲의
그윽한 향기에 관한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지금 너에게 내소사 솟을꽃살문에 관한 얘기를 해주고 싶다
한 송이 한 송이마다 금강경 천수경을 새겨 넣으며
풍경소리까지도 고스란히 담아냈을
누군가의 소명을 살그머니 엿보고 싶다
매화 국화 모란 꽃잎에
자신의 속마음까지 새겨 넣었을
그 옛날 어느 누구의 곱다란 손길이
극락정토로 가는 문을 저리도 활짝 열어놓고
우리를 맞이하는 것인지
길이 다르고 꿈이 다른 너와 내가 건너고 싶은
저 꽃들을 바라보며
저 꽃에서 무수히 흘러나오는 불법을 들으며
나는 오늘 너에게 한 송이 꽃을 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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