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한민국 구석구석/서해랑길

서해랑길 6코스 녹진국민관광단지-진도타워-둔전방조제-벽파진전첩비-벽파항-용장성 여행기록

♧ 벽파진전첩비 ♧


♧ 트레킹일자 : 2023.08.12. (토)
♧ 트레킹코스 : 녹진국민관광단지-진도타워-무궁화동산-습지보호구역-둔전방조제-벽파진전첩비-벽파항  //  이상 거리 약 10.5km, 트레킹 시간 약 2시간 48분(식사, 휴식시간 포함)

※ 여행세부일정

○ 07:23 : 녹진국민관광단지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녹진리 산2-106
○ 07:34 ~ 07:43 : 진도타워
○ 07:49 : 강강술래터
○ 08:05 : 무궁화동산 입구
○ 08:31 : 둔전리습지보호구역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2002
○ 08:49 : 둔전방조제(시점)
○ 09:04 : 둔전방조제(종점)
○ 09:11 : 새우양식장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오류리 108
○ 09:51 : 벽파마을
-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 935-1
○ 09:57 ~ 10:06 : 벽파진전첩비
○ 10:07 : 벽파정
○ 10:11 : 벽파항 도착 트레킹 종료

○ 10:30 ~ 10:45 : 고군면 소재지 이동
- 진도 고군콜택시 이용(택시비 10,000원)
- 고군면 소재 '콩쥐팥쥐' 식당에서 식사
○ 11:36 ~ 11:50 : 용장성주차장 이동
- 진도 고군콜택시 이용(택시비 7,000원)
○ 11:54 ~ 12:25 : 용장성 탐방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179-2

※ 관련 여행기록
- 서해랑길 5코스 원문버스정류장-명량대첩기념공원-진도대교-녹진국민관광단지 여행기록 :  https://jungwa686.tistory.com/m/15973920


서해랑길 5코스 원문버스정류장부터 녹진국민관광단지까지 트레킹을 마치고 편의점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 한잔 마시면서 주차장에서 쉬었다가 서해랑길 6코스 트레킹을 시작했습니다.
이곳에 식당이 문을 열었다면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준비해온 간식으로 용장성 근처에서 점심식사하려 했는데 이곳에 식당이 문을 연 곳이 없군요.

하는 수 없이 일단 최대한 가다 도중에 준비한 간식을 먹고 벽파항 정도에서 몸 상태를 보고 용장성까지 갈 것인지 아니면 트레킹을 마치고 택시를 불러 진도읍내로 가서 식사를 한 후 용장성주차장으로 갈 것인지 판단하기로 했습니다.

♧ 진도타워 올라가는 길... ♧

녹진국민관광단지 주차장 인근에 있는 6.25전쟁 '호국무공수훈자공적비'를 둘러보고 도로를 따라 진도타워로 올라 갑니다.
세번째 사진이 도로 건너편 진도휴게소 주차장 방면인데 그곳 식당들도 이른 시간이라 문을 연 곳이 없네요.
진도타워로 올라 갑니다.
진도타워가 망금산(해발 106.5m) 정상에 위치하고 있어 망금산 등정 중입니다.

♧ 진도타워 ♧

녹진국민관광단지에서 약 11분 후 진도타워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니 진도대교와 울돌목이 한 눈에 보입니다.
아마도 영화 명량에서 진도 민초들이 맘 졸이며 전투장면을 보던 곳이 이곳 망금산이었지 않을까요?

♧ 진도타워 이모조모 ♧

진도타워 전망대에서는 진도대교와 명량해전 현장이었던 울돌목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아마도 1597년 10월 26일 명량해전 당시 이곳
망금산 정상주위에서 수 많은 백성들이 맘 졸이며 전투를 지켜보았을 듯 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전투지휘하는 모습을 조형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 강강술래터 ♧

반대편 진도타워 데크로드를 내려서서 조금 걷자 강강술레터가 나옵니다.
명량해전 때 이곳에서 진도 아녀자들에게 남장을 하고 돌게해서 왜적들로 하여금 군사가 많아 보이게 혼란을 주었다는 곳입니다.
현재는 체험장 공사 관계로 폐쇄 중이네요.

♧ 무궁화동산 ♧

망금산을 내려오자 두번째와 세번째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화장실과 정자가 있는 소공원에 도착했습니다.
결국 정자에서 잠시 배낭을 벗어 놓고 아침식사를 하고 출발했습니다.
이어 무궁화꽃이 피어 있는 도로를 걸어 해안가로 나왔습니다.
이곳이 무궁화동산이 있는 곳이군요.

♧ 해안도로를 걷습니다 ♧

해안으로 나왔습니다.
적재적소에 갈림길에는 서해랑길 안내표지와 리본들이 방향을 알려주어 아주 길찾기는 쉽습니다.
오전 8시....
이른 아침이지만 비록 해발 100m 조금 넘는 망금산이지만 산을 넘어오자니 땀을 많이 흘렸습니다.

♧ 아침 진도 앞바다 모습 ♧

진도 앞바다 해안도로를 따라 걸어 갑니다.
이곳은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둔전리 해안입니다.
아침 바다에는 인적도 전혀 없이 아주 평온하네요.
어느 덧 지나온 진도타워와 망금산이 저 멀리 물러나 있습니다.
둔전리 배수갑문 앞을 지났습니다.

♧ 둔전리 습지보호구역 ♧

무궁화동산 입구에서 약 26분 정도 해안도로를 걸어 둔전리 습지보호구역에 도착했습니다.
데크탐방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진도 앞바다 조망이 또한 일품입니다.
맞은 편에 진도타워와 망금산이 한눈에 들어 옵니다.

♧ 둔전방조제 ♧

습지보호구역 탐방로를 지나 다시 도로를 걸어 올라갑니다.
오호라~~~
이 도로 이름이 진도일주도로라고 하네요.
진도섬 해안을 따라 진도일주도로가 만들어져 있나 봅니다.
안내문을 보니 총거리가 120km라고 합니다.

둔전리 습지보호구역에에서 약 18분 지나서 둔전방조제를 만났습니다.

♧ 둔전방조제를 건너다. ♧

약 15분을 걸어 둔전방조제를 건너 왔습니다.
상당히 규모가 있는 방조제입니다.
때마침 해수면을 보니 바닷물이 들어 오네요.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신동리와 고군면 오류리 사이에 있는 방조제이다.
높이 3.5m, 길이 1,116m이다. 1956년 군내면 신동리(둔전리에 속한 행정리)의 도깨비 불치와 고군면 오류리의 뒷개 사이를 막아 쌓았다. 군내면의 북동쪽에 있다. 진도대교 남쪽 끝에서 4차선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둔전간척사업에는 간척지 상류 지역 해면에 저수지를 막는 방식이 이용되었다. 조선시대 둔전(屯田)이 있었던 데서 둔전리라는 지명이 생겨났고, 둔전방조제는 이 지명에서 유래하였다.

간척으로 219ha의 농경지가 만들어졌다. 새로 생겨난 농경지에 실향민 120가구를 이주시켜 피난촌인 안농마을을 조성하였다. 또한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44ha에 이르는 둔전저수지를 만들었다."[출처 : 두산백과]


♧ 이제 한동안 계속 도로를 걸어요 ♧

이제부터 한 동안 도로를 걸어야 합니다.
물론 진도일주도로입니다.
아침 9시가 넘어가니 햇빛이 뜨거워집니다.
두번째 사진에 보이는 곳은 새우양식장 모습이고 터널도 하나 지났습니다.

♧ 벽파마을로 들어오다! ♧

둔전방조제를 벗어나서 약 47분 지나 벽파마을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무궁화동산 입구에서는 약 1시간 46분 동안 도로를 걸어서 벽파마을로 들어 왔습니다.
즉 숲길을 벗어나서 거이 2시간 가량 도로를 걸은 셈입니다.
비록 오전시간이기는 해도 햇빛을 가려주는 것 없는 도로를 걷자니 엄청 힘들었습니다.

♧ 고군연으로 향합니다 ♧

벽파마을입구를 지나 삼거리에서 당연히 좌측 고군면 방향으로 갑니다.
벽파마을을 지나서 다섯번째 사진과 여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충무공전첩비입구를 만나서 전첩비로 향했습니다.
조금 올라가자 전방에 전첩비가 보입니다.

♧ 벽파진전첩비 ♧

충무공 벽파진전첩비에 도착했습니다.
아래에는 벽파정이라는 정자가 보이고 벽파항과 그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 오네요.
벽파진전첩비에 도착하니 오전 10시입니다.
여기서 오늘 트레킹 종점인 용장성까지는 약 6km.
안내산악회에서 준 산행시간이 오후 13시까지인데 그곳까지 가는 데에는 여유가 있지만 문제는 그곳에 식당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오늘 트레킹을 벽파항에서 마감하기로 하고 벽파진전첩비에 옆 수도에서 땀을 씻어내고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이순신은 1597년 8월 29일, 양력으로 10월 9일 벽파진에 통제영을 설치했다. 이순신은 울돌목으로 수군진을 옮기기 전까지, 여기에 머물며 명량에서의 전투를 그렸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조선을 구하기 위해서.

이순신은 명량대첩을 하루 앞둔 9월 15일(양력 10월 25일) 조수를 타고 우수영 앞바다로 진을 옮긴다. 울돌목을 등지고 진을 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적은 수의 군사와 배로 많은 수의 일본군과 일본의 전선에 맞서려면 울돌목의 좁은 해로가 제격이라는 판단을 한 것이었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1000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일부당경 족구천부, 一夫當經 足懼千夫)'는 이순신의 말은 울돌목을 염두에 둔 지략이었다. 결과는 우리가 다 아는 대로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큰 승리였다.

벽파진은 진도의 동북쪽 끝자락에 있는 포구다. 전라남도 진도군 고군면 벽파리에 속한다. 해남 어란진에서 울돌목으로 가는 길목이다. 1207년(고려 희종 3년) 벽파진을 진도와 해남을 연결하는 나루터로 개설하면서 정(亭)과 숙소인 원(院)을 설치했다.

고려시대 삼별초 군사들도 이곳을 통해 진도로 들어왔다. 삼별초군은 고려가 몽고와 굴욕적인 강화를 맺고 개경 환도를 강행하자 이에 불복하고 대몽항쟁을 결의했다."[출처 : 전남일보]


♧ 벽파정 ♧

벽파진전첩비 아래 벽파정으로 내려왔습니다.
이곳은 1207년 고려 희종 때 이곳 벽파항 나루터 언덕에 지은 정자라고 합니다.
이곳 벽파항 나루는 고려 때 대몽항쟁을 했던 삼별초가 들어온 곳이기도 하고 이순신 장군이 명량해전을 앞두고 16일 동안 머무르신 곳이라고도 하네요.

♧ 벽파항에서... ♧

벽파항으로 내려왔습니다.
쇠락한 작은 항구... 벽파항.
하지만 진도대교가 개통되기 전만해도 이곳이 진도를 들어오는 관문으로 번성했던 나루터였다고 합니다.

벽파항에서 진도군 고군면 개인택시를 불러 고군면 소재지로 이동해서 식사를 한 후 다시 고군면택시를 타고 용장성으로 이동했습니다.

♧ 용장성 탐방로 ♧

고군면 소재지에서 식사를 하고 1시간 정도 여유있게 용장성 주차장으로 이동해서 용장성을 둘러보았습니다.
탐방로가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 용장성 이모조모 ♧

이곳 용장성은 용장산 기슭에 조성되어 있는데 거이 용장산 7부 능선까지 올라갑니다.
발굴지를 둘러싸고 탐방로가 있습니다.
총 17단 중 10단 발굴이 완료되었다고 하니 현재도 발굴을 계속하고 있나 봅니다.


"진도 용장성(사적 제126호)은 고려 시대 대몽 항쟁을 이끌었던 삼별초의 근거지였다. 최씨 무신정권의 사병이었던 삼별초는 몽골의 침략으로 강화도로 천도(1232년)한 이후 대몽 항쟁의 주축이었다.

1270년 정권을 되찾은 원종이 몽골의 뜻에 따라 개경으로 환도하고 삼별초의 해산을 명령하자, 이에 반발한 무신 배중손은 원종의 6촌인 승화후 온(溫)을 왕으로 추대하고 몽골과 고려 왕정을 상대로 항전을 벌였다.

강화도에서 진도로 내려와 용장성에 터를 잡고 용장사를 궁궐로 삼은 삼별초는 이곳에서 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퇴각했고, 결국 1273년 제주에서 전멸했다. 신식 화기로 무장한 몽골군과의 전투로 용장성은 모두 불타버렸다.

길이가 13㎞에 달하던 옛 모습은 대부분 사라지고 성의 부분적인 형태와 계단식으로 만든 궁터에 주춧돌만이 남아있다. 극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는 용샘에는 도롱뇽과 개구리가 살고 있다."[출처 : 연합뉴스]


♧ 산성을 내려갑니다 ♧

기대했던 것보다 탐방로가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
첫번째 사진이 정상부이고 위로는 용장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길인데 길이 거칩니다.
용장성을 올라올 때와 반대편으로 내려갑니다.

♧ 용장성 주차장 ♧

용장성 주차장으로 되돌아 왔습니다.
용장성을 돌아보는데 약 30분 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주차장 한켠에서 약 30분 정도 쉬었다가 안내산악회 버스를 타고 귀가길에 올랐습니다.


☞ 트레킹을 마치고...[ 용장성 삼별초상 모습  ]☜


식사문제로 벽파진항에서 용장성까지 약 5km 정도 잘라먹었지만 볼 것은 다 보았던 여행길이었습니다.
서해랑길 5코스와 6코스는 다시 한번 학창시절 배웠던 우리민족의 고난의 역사를 되돌아 볼 수 있었던 그런 코스입니다.

다만, 진도 용장성 주변은 사람이 너무 없어 편의시설이 화장실을 제외하고는 전혀 없어 좀 썰렁했습니다.


♧ 어떤 기도 ♧


                                          -  글 이 해 인
            

적어도 하루에
여섯 번은 감사하자고
예쁜 공책에 적었다

하늘을 보는 것
바다를 보는 것
숲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기쁨이라고
그래서 새롭게
노래하자고...

먼 길을 함께 갈 벗이 있음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기쁜 일이 있으면
기뻐서 감사하고
슬픈 일이 있으면
슬픔 중에도 감사하자고
그러면 다시 새 힘이 생긴다고

내 마음의 공책에
오늘도 다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