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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록/일반산행후기

[스크랩] 달이 뜨는 월출산 산행을 마치고

■ 산행일 : 2006. 11. 19.(일)산행코스 : 주차장→0.7km←천황사→0.9Km←구름다리→0.3Km←바람폭포/구름다리/천황사 
   삼거리이정표→0.5Km←광암터→0.9Km←천황봉→1.1Km←바람재→0.4Km←구정봉삼거리→
   1.5Km←미왕재→2.6Km←도갑사(총 도상거리 8.9km)함께 하신 산우님 : 태산님, 수리지기님, 고야님, 오렌지님, 마루님, 설백호님, 구기회님, 여
   름향기님, 아그봉님, 해피님, 산녀님, 여원님, 샤르망님, 자연사랑님, 카르멘님, 은방울님, 놀
   부님, 낚시대장님, 랑랑공주님, 1ton님, 체리님, 체리1님, 피오나님, 짱차장님, 서라벌님, 머
   린님, 깜상님, 호호님, 오월님, 평촌아찌님, 목탁님, 햇님달님님, 등등산님, 보미님, 여행강타
   님, 만정님, 엄지님, 돌이님, 가온님 그리고 너울 (총 40명)
■ 상세일정
 ㅇ 2006. 11. 19. 05:30  : 안양범계역 국민은행
 ㅇ 05:40 : 안양 농수산물 시장
 ㅇ 05:55 : 안양농수산물 시장 출발
 ㅇ 10:45 : 서해안고속도로 - 목포톨게이트 - 영암 월출산 천황사 주차장 도착
 ㅇ 11:00 : 산행 시작 (산행시간 : 식사시간 및 휴식시간 포함 7시간)
    - 11:30 : 구름다리/바람폭포/천황사 삼거리 도착
    - 12:30 : 구름다리 도착
    - 14:20 : 천황봉 도착
    - 15:00 : 점심 식사 후 출발
    - 16:20 : 구정봉/도갑사/천황봉 삼거리 도착
    - 17:10 : 미왕재 억새밭 도착
    - 17:40 : 도갑사 도착(산행 후미 기준)
 ㅇ 18:00 : 도갑사 주차장 하산완료
 ㅇ 18:20 : 영암군청 인근 동막식당 이동
 ㅇ 19:00 : 저녁식사(짱뚱어탕) 후 안양으로 출발
 ㅇ 00:35 : 안양농수산물 시장 도착

월출산. 산행을 시작하면서 아마도 이 이름을 수십번은 들은 것 같다. 올 3월경에도 새로 구름다리를 개장했다고 해서 갈 계획을 세웠는데 가지 못했다. 오늘 드디어 지난 시간 미뤄온 밀린 숙제를 하는 기분으로 월출산 산행을 떠난다.

천왕사주차장.. 오늘 산행의 들머리이다. 오늘 산행에는 총 40명의 산우님들이 함께 했다. ■월출산 월출산은 "달 뜨는 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유수한 문화자원, 그리고 남도의 향토적 정서가 골고루 조화를 이룬 한반도 최남단의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소백산맥이 목포 앞 바다로 흘러가다 평지에 돌출된 잔구 형태의 월출산은 천황봉(809m)을 중심으 로 산 전체가 수석의 전시장이라 할 만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백제의 왕인(王仁)박사와 신라말 도선(道詵)국사의 탄생지이기도 하며, 호남의 소금강산이라 불린다. 해발 809m로 높지는 않지만 산체(山體)가 매우 크고 수려하다. 삼국시대에는 달이 난다 하여 월라산(月奈山)이라 하고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 부르다가, 조선시대부터 월출산이라 불러왔다.[월출산국립공원홈페이지, empas지식검색 펌] 달빛 휘황한 월출산은 남원(南原)의 지리산(智異山), 장흥(長興)의 천관산(天冠山), 부안(扶安)의 능가산(楞伽山), 정읍(井邑)의 내장산(內藏山)과 더불어 호남(湖南)의 5대 명산이다. ‘호남의 소금강(小金剛)’으로 통하는 우리나라 최남단의 명산이다. ‘작은 금강산’으로 여기면 틀림없다. [주간조선 펌] 또한 천황봉을 중심으로 남쪽에는 단아한 모습의 무위사, 서쪽에는 도갑사가 있는데 도갑사 의 해탈 문, 무위사의 극락전, 마애여래좌상 등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있다.

오늘 산행은 천황사 주차장을 출발하여 구름다리를 지나 사자봉을 거쳐서 천황봉에서 점심식사를 하 고 구정봉 그리고 미왕재를 지나 도갑사로 하산하는 코스이다. 산행준비를 하신 메트로칸님이 해외출장으로 오시지 못하여 버스 안에서 마루님과 등등산님 등 산행 경험이 있으신 분들의 도움을 받아 코스를 확정지었다. 금요일 오후. 메트로칸님의 전화를 받고 서둘러 한국의 산하에서 산행지도를 골라 출력해서 준비했는데 실제 산행 코스와 다소 차이가 있다고 앞서 월출산 산행경험이 있으신 마루님께서 알려주셨다. 여기가 천황사지인 모양인데 절이 보이지 않는다. 천황사는 지난 2000년 화재로 소실되고 지금은 절터만 남아있단다. 그리고 천황사 등산로 근처에는 고산 윤선도 시비, 영암아리랑 노래비, 바우제 제단 등 볼거리가 많다는데 시간에 쫓겨 살펴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렸다.

바람폭포 갈림길... 주차장에서 산행을 시작한지 약 30분 후 바람폭포갈림길에 도착했다. 구름다리를 지나기 위해서는 여기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한단다. 정방향으로 산행을 해도 구름다리를 갈 수는 있는 모양인데...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정방향으로 가면 상당한 깔닦고개를 올라야 구름다리에 도착할 수 있다. 앞서가는 산우들을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바람폭포 갈림길에서 만난 천황교의 모습 곧바로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이 천황교라는 다리를 건너야 한다.

사자사 목탑지.

바람폭포 갈림길에서 약 5분여 올라가자 사자사 목탑지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사자봉 아래에 있는 사자사지는 원래 천황사라고 불렸는데 이 목탑이 발견되어 사자사라고 고쳐 부 른단다. 결국 모든 산행이정표가 다시 정비되어야 할 듯... 아마도 천황사주차장도 사자사주차장이라고 불러 야 할 것 같다. ■ 사자사목탑지

사자사(師子寺)라는 절터에 있는 다층의 목탑 유구이다. 사자사지는 월출산 사자봉에 있는데 그동안 천황사라고 불리어 오다가 발굴 조사에서 ‘사자사’라는 명문이 출토됨으로써 절이름이 밝혀졌다. 목탑지에서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기와들이 발견되어 이때 사자사가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목탑지의 기단은 한변의 길이가 10.5∼10.8m로 거의 정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남쪽과 서쪽은 장대석과 할석들로 단면 장방형으로 쌓아 만들었다. 기초를 이루는 초석은 양면 각각 4개가 아주 정연하게 노출되었는데 남서쪽 모서리 1개만 유실되고 없다. 각 초석 간의 거리는 약170㎝이며, 양 모서리 초석간의 거리는 약 5.2m로 역시 정사각형을 이루어 이 목탑은 앞면 옆면 모두 3칸 건물임을 알 수 있다. 동북쪽 모서리 초석과 기단 모서리 사이에 활주의 초석으로 보이는 초석이 놓여 있다. 목탑의 중심부를 이룬 심초 부분은 가묘가 있는데 현재 심초석은 보이지 않았으나 잔 할석들이 일부 깔려 있어 심초석과 사리장치 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계단석 북쪽 부분에서 방형의 사리공이 있는 석재가 있었는데 바로 심초석 아래에 있었던 것으로 생 각된다. 계단이 있는 서쪽 기단에서 28.2m 떨어진 곳에 법당터로 보이는 건물터가 있다. 목탑지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와편, 청자편, 철못, 청동화염문편 등이다. 목탑지 유구의 창건은 출토 유물로 볼 때 고려 전기인 11세기 경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며, 기 단과 초석들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 있어 우리나라 목탑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naver지식정보]

사자사목탑지를 지나 구름다리 가기전 만난 이정표. 소나무 사이로 영암의 넓은 들판이 보인다. 저 넓은 들판에 홀로 서 있는 산이 월출산이다. 온통 산으로 둘러쌓여 있는 내 고향 소백산 마을과는 너무나도 다른 풍광이다. 순간 지난 달 도락산에서 보았던 고향의 주변 풍광과 너무나 대조되어 사진 한장 남겼다.

구름다리를 건너기 위해 몰려든 산객들... 구름다리 가는 길은 너무나 많은 산객들 때문에 좁은 등산로에서 제대로 진행하기가 너무나 힘들다. 아마도 온통 이지역 근방 산악회에서 모두 몰려왔나보다. 예정시간대로라면 천황사주차장에서 1시간이면 도착해야 할 거리이건만 무려 1시간 30분이 지나서 야 구름다리에 도착했다. 하지만 구름다리로 오르는 철계단에 오르기 위해 통 사정(?)하고 있는 인파를 보니 그져 질리기만 할 뿐...

구름다리를 건너기 위해 인파들 뒤에서 철계단으로 오르는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인내심 많으신 체 리님과 호호님 ㅎㅎ[사진 평촌아찌님] 오늘 산행에 후미를 맡은 입장에서 당연히 구름다리를 건너야 하지만 아직 선두인 구기회님도 구름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계시다. 몇몇분의 산우님들이 구름다리를 본 것만으로 만족하시고 바람폭포로 하산하여 천황봉을 가시겠다 고 하산하셨다. 일단 구기회님과 무전통화하여 천황봉에서 합류하기로 하고 나도 바람폭포 방향으로 앞서간 이들을 따라 하산했다.

구름다리와 함께하신 산녀님[사진 평촌아찌님] 오늘 처음 우리 산방에 오셨는데 너무 외로우셨을 것이다. 여유롭게 호젓한 산행이었으면 함께한 이들과 많은 이야기도 나누고 해서 한결 산행이 즐거우셨을 텐데...

구름다리입구에서 바로 바람폭포로 하산한지 약 30분, 도상거리로는 0.5km 이동하니 바람폭포갈림 길 이정표가 나온다.

바람폭포에는 물은 하나도 없고 약간은 썰렁한 기분까지 든다. 이곳도 천황봉오르는 길이 산객들로 가득차 있다. 산행시간이 너무 늦어지기만 하는 것이 안타깝다.

천황봉 통천문 가기 전에서 만난 이정표. 국립공원이라서 그런지 비교적 이정표가 잘 정비가 되어 있다. 이곳도 엄청 산객들이 많고 하산하는 이들과 교행이 일어나서 시간이 너무 지체가 된다. 벌써 머릿속으로는 고민이 된다. 일단 천황봉에서 구기회님 등과 만나 안양귀가시간 등을 고려해서 산행코스 조정여부를 상의하기로 하고 천황봉으로 그냥 오른다.

천황봉 오르기 전에 돌아본 구름다리 방향. 저 아래 월출산의 명물 구름다리가 보인다. 아직도 너무 많은 산객들로 넘쳐난다. 누가 그러길 한번에 30명 이상은 구름다리에 올라가지 말라 는 안내문이 있다고 하던데 ㅠㅠ

천황봉을 향하여 올라가는 길. 걱정했던 것 보다는 날씨가 너무 좋다. 아니 오히려 산행하기에 딱 좋은 날씨이다. 산아래 넓은 들모습이 오히려 낯 설기만 하다. 강원도나 내 고향 산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모습...

다시 한번 아쉬움에 돌아본 구름다리... 아쉬움에 다시 한번 구름다리를 향하여 사진기를 눌렀다. 대둔산에서도 저런 구름다리를 건넜지만 나름대로 구름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모습이 있을텐데 ㅎㅎ 하지만 구름다리로 갔더라면 지금 이 모습을 보지 못했을테니 상계한 셈...

천황봉 가기 전 통천문 통천문은 겨우 한 사람만 통과할 수 있다. 이곳을 통과해야 하늘에 다을 수 있다니 지나갈 수 밖에... 천황봉에서 하산하는 이와 교행이 이루어지느라 너무나 지체가 된다. 내려가는 이들도 산행길이 늦어져서 마음이 바쁘겠지만 우리도 갈길이 먼데...

천황봉. 배가 고프다. 예정시간보다 훨씬 늦어져서 2시가 넘어서야 천황봉에 도착했다. 먼저 오신 산우님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산행자료에는 넓은 암반석이 300명은 앉을 수 있다고 했는데 천황봉 정상은 산객들로 가득차 있어 식사할 자리 잡기도 쉽지가 않다 ㅎㅎ

식사를 마친 후 아그봉님이 나도 모르게 추억 한장 남겨주셨다. 저 아래로 넓은 들이 보이고 .. 날씨가 너무 좋아 천황봉 주변 경관 조망이 너무 좋다. 문득 이곳을 찾았다가 자욱이 끼여 있는 안개 때문에 아름다운 경관을 보지 못했다는 옛 先人 생각 이 났다. 月 出 山 - 고산 윤선도 月出山 높더니만 미운 것이 안개로다 天皇 第一峰을 일시에 가리는구나 두어라 해 퍼진 뒤면 안개 아니 걷히랴. 감상 : 고산 윤선도선생이 귀향길에 전남 영암의 월출산의 광경을 보고 감탄하여 지은 시조로 [산중 신곡]에 실려 전한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만은 저 어르신 보다는 내가 훨 행복한가?? ㅎ

천황봉에서 구정봉 방향으로 바라본 아기자기한 암릉모습 하산길에 지나가야 할 구간의 모습이다. 암릉능선이 너무 아름답다.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은 월출산(月出山·809m)을 ‘남쪽에 제일 가는 그림 같은 산’이 라 읊었단다.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가 ‘산중신곡(山中新曲)’에서 ‘선경(仙境)’으로 묘사한 곳 또한 월출산 이고 ‘그림’과 ‘신선의 풍광’이란 곧 영기(靈氣)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단다.

바람재 이정표 천황봉 정상에서 가파른 암릉구간을 약 40분여 내려오니 바람재에 도착했다. 하산길에 산행초심자에게는 다소 위험하기도 하다. 오늘 처음 오신 여산우님이 다소 힘들어하신다.

구정봉 삼거리 가기 전 기암괴석

구정봉 삼거리 당일무박산행이라 오늘은 구정봉에 오르지는 않는다. 저 삼거리에서 그냥 도갑사로 진행할 것이다. ■ 구정봉 항상 물이 고여있어 용이 살았다고 전해지는 기이한 9개 단지모양의 구정봉(九井峰)에 이르며 그 아래로 500m쯤 내려가면 국보 144호로 지정된 마애여래좌상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이 자리 잡은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국보 144호)이 있는 산이 월출산이다. 높은 곳에 있을 뿐더러 불상의 자체 높이만 8.6m에 달하는 거인이다.

미왕재 가는 길에 만난 어느 이름모를 산우님. 평평한 너럭바위에 홀로 앉아 월출산의 선경을 감상하면서 쉬고 있는 어느 산우님이다. 너무나 평화로운 모습에 그냥 사진기를 눌러보았다. 문득 이곳 월출산의 절정을 맛보지 못한 어느 옛 어르신 생각이 난다. 저 산우님은 최소한 그분보다는 지금 행복할 것 같다. 조선 성종조. 이 나라 성리학의 대가로서 '조의제문'사건으로 인하여 무오사화로 그 꿈을 이루지 못 하고 세상을 떠난 어르신의 한시이다. ■ 월출산 - 김종직 등불 켜고 이부자리 위에서 밥먹고 서성대며 괴로워 하는데 월출산 꼭대기에서 햇빛이 비쳐오네. 뭉게뭉게 피어나던 들구름은 동혈에서 걷히고, 가을산은 뾰죽뾰죽 푸른하늘에 솟았구나. 덧없는 반평생을 사노라 이 산 이름 들은지 오래건만, 오늘까지도 절정에 오르지 못했으니 세상사 늘 바쁜거라네. 가야산과 비슷해서 참으로 기쁘이 공연히 말위에서 고향생각 하누나. 김종직 1431(세종 13) 경남 밀양~1492(성종 23). 조선 초기의 문신·학자. 재지사림(在地士林)의 주도로 성리학적 정치질서를 확립하려 했던 사림파의 사조(師祖)이다. 세조의 즉위를 비판하여 지은 〈조의제문〉이 무오사화를 불러일으켰다.

구정봉으로 가는 이정표 시간이 늦어져서 베틀굴도 구정봉도 그리고 마애여래좌상도 그냥 지나친다. ■ 구정봉 이야기 바람재를 지나 발길을 재촉하면 구정봉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조금만 더 걸으면 베틀굴이 등산객 을 놀라게 한다. 아가리를 쩍 벌린 거대한 야수와도 같은 형상이다. 임진왜란 때 이 굴로 피란한 여인들이 베를 짠 곳이다. 굴 속으로 들어가면 여성의 음부 형상 바위가 적나라한 나신을 드러낸다. 음굴(陰窟), 음혈(陰穴)이 베틀굴과 동의어인 까닭이다. 베틀굴 바로 위 구정봉은 생명력 강한 여인 아홉이다. 다산(多産)과 풍요를 약속하는 웅덩이 9곳에 물이 괴어 있다. 전설은 ‘월출산 구림 마을의 동차진 이라는 남자가 구정봉에서 하늘을 깔보는 언행을 하다 옥황상제에게 벼락을 아홉 번 맞고 죽었다’고 돼있다. 그러나 동차진의 영가(靈駕)가 고백한 진실은 ‘성인용’이다. 어리고 젊은 처첩을 아홉이나 거느 리고 이곳에서 방탕한 짓을 벌이다 날벼락을 맞았다는 것이다. 주위 풍광은 곧 도원경(桃源境)이요, 별유천지 비인간(別有天地 非人間)이다. 돈 많은 한량이라면 능히 침소를 벗어나 자연의 기운을 흡입하고 싶어했음 직하다. [주간조선 펌]

미왕재 삼거리 억새밭이 있는 곳이다. 민둥산이나 영남알프스 영축산, 신불산, 간월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암릉구간을 지나오다 억새밭 을 만나니 반갑다. 벌써 오후 4시가 훨 넘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하산을 완료해야 하는데.. 마음이 조금씩 바빠지기 시작한다.

억새 모습

도갑사 일주문[사진:낚시대장님] 예정보다는 약 1시간이 늦어 오후 5시 40분경 도갑사에 도착했다. 날이 어두워 찍은 사진이 좋지 않아 다른 산우님이 촬영하신 사진이다. 시간적인 여유만 있다면 유래 깊은 도갑사를 여기저기 둘러보고 가고픈 마음이지만 오늘은 시간이 없다. 이미 후미를 제외하고는 다 하산해서 버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는 연락이 왔다. ■ 도갑사 도갑사는 월출산에 있는 절로 통일신라말 도선이 지었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다만, 도갑사 입구에 고려 선종 7년(1090)에 만들어진 국장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세웠고 11세기 후 반에 번성한 것으로 추측된다. 그 뒤 세조 3년∼10년(1457∼1464)에 수미왕사가 크게 다시 세웠으며, 여러 차례 수리·복원하여 현재 모습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 명부전, 미륵전, 요사채 등이 있으며 그외 도갑사해탈문(국보 제50호), 도갑사석조여래좌상(보물 제89호), 도갑사소조동자상(보물 제1134호), 도선수미비, 오층석탑, 수 미왕사비 등 많은 문화재들이 있다.

도갑사 도선수미비 ■ 도선대사 도선대사는 이곳 영암출생이다. 도갑사의 ‘도선수미 비문’(道詵國師 守眉大禪 碑銘)도 도선의 ‘아버지’가 오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어머니 최씨(崔氏)가 영암의 성기산(聖起山) 벽촌에서 도선을 낳았다고 새겨 놓았다. 성(聖)스러운 기운이 일어나는(起) 산(山)이라 해서 성기산이다. 중국 주(周)나라 시조 후직(后稷)의 어머니 강원(姜嫄)이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임신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신생아 후직은 기러기들이 보살폈다. 산천의 정기를 받고 숙기(淑氣)를 모아 태어난 백족화상(白足 和尙)이 일체의 속진(俗塵)에서 벗어난 것과도 같다. 도선은 우리나라의 지형을 행주형국(行舟形局)으로 짚었다. 국토 전체를 배(船)의 꼴로 요약한 것 이다. 그래서 배의 수미(首尾)를 진압한다는 의도로 절을 짓고 탑을 세우게 했다. 왕건(王建)의 아버지에게 는 명당 양택(陽宅), 즉 집터를 잡아줬다. 온통 눈 천지가 돼도 왕건의 집만큼은 보송보송했다. 왕건이 고려(高麗)를 건국하자 송악(松嶽)을 왕도(王都)로 점찍으며 500년 국운을 보장했다. [주간조선에서 펌] 도갑사에 관련된 자료를 찾다보니 조선 세조때 재상 신숙주가 남긴 한시 한수가 있어 소개한다. <도갑산계 작설차> (道岬山寺 雀舌茶) : 도갑사의 작설차와 (甕村籬落 雪梅花) : 옹촌 울타리 아래 설매화는 (也應知我 思鄕意) : 응당 내 고향 생각하는 뜻 알게하니 (說及南州 故事多) : 남쪽의 지나간 많은 일 말해 주려므나 도갑사 계곡에서 나는 차(茶)는 품격(品格)이 뛰어나서 옛부터 애음해 왔는데 조선 세조때 수미왕사(도갑사 증수 함,세조의 왕사)가 일찍부터 세연(世緣)이 있던 신숙주에게 도갑사에서 생산한 차를 선물한 일이 있었다, 차를 받은 신숙주가 수미왕사에게 위와 같은 시(詩)한수를 지어서 보답했다고 한다.

당일 산행으로 빡빡한 일정 그리고 늦은 귀가 시간에서 불평 한마디 없이 오히려 운영진에게 격려해주신 함께 하신 산우님들께 감사드리며 무박산행이나 평일산행으로 왔다면 한결 많은 월출산의 모습을 담아가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월출산 산행기를 마친다.

 

         ■ 영암아리랑

 

          달이 뜬다 달이 뜬다

          영암 고을에 둥근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왕봉에 보름달이 뜬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에헤야 데헤야 어서와 데야

          달보는 아리랑

          임보는 아리랑

출처 : 평촌산사랑모임
글쓴이 : 너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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