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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구석구석/남파랑길

남파랑길 80코스 회령진성-이청준 소설문학길-신마항-마량항 여행기록


♧ 트레킹일자 : 2023.02.25. (토)
♧ 트레킹코스 : 회진시외버스터미널-회령진성-천년학세트장-학산-덕촌방조제-서신마을-하분마을-신마항-마량항 // 이상 거리 약 20.7km, 트레킹 시간 약 4시간 47분(식사, 휴식시간 포함)

※ 여행세부일정

○ 00:15 : 죽전경부고속도로(하행)정류장
○ 04:29 : 회진시외버스터미널
-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회진리 1387-1
○ 04:32 : 회령진성
○ 04:44 : 회진항 해안도로
○ 05:02 : 천년학세트장
○ 05:09 : 선학동
-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회진리 1-1
○ 05:23 : 학산등산로 입구
○ 06:03 : 진목마을회관
○ 06:08 : 이청준 생가
○ 06:55 : 덕촌방조제
○ 07:10 : 덕촌방조제 배수갑문
○ 07:14 : 대덕읍 잠두리
○ 07:29 : 대덕읍 신리
○ 08:01 : 서신마을 표지석
○ 08:06 : 오성금삼거리
○ 08:13 : 하분마을
○ 08:29 : 상흥리 갑문
○ 08:37 : 신마항
- 전라남도 강진군 마량면 원포리 755-32
○ 08:48 : 마량교
○ 09:16 : 마량항 도착 트레킹 종료


오늘은 지난번 남파랑길 79코스에 이어 80코스와 81코스 트레킹을 떠납니다.
지난 번 남파랑길 79코스의 종점이었던 회진시외버스터미널에서 시작해서 이청준 소설문학길을 지나 마량항에서 80코스를 마무리하고 이어 가우도입구까지 걸어서 81코스를 마무리하는 여정입니다.

약 35km가 넘는 거리에 산악회에서 트레킹 시간으로 약 10시간 40분을 주면서 오후 3시까지 가우도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라고 하는군요.

♧ 회령진성 ♧

어둠 속에서 지난 번 남파랑길 79코스 트레킹 때 둘러보았던 회령진성에 오르는 것으로 트레킹을 시작합니다.
회령진성을 가로질러 반대편으로 빠져나가 마을길을 통해 성을 내려갑니다.


"장흥 회령진성은 ‘1490년(성종 21년) 4월 높이 13척, 둘레 1,990척 규모로 흙과 돌을 섞어 쌓았으며, 동벽은 벼랑 위에 쌓았다’는 성종실록의 역사기록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하게 됐다.

이외에 남문·북문·동문이 표현되어 있는 ‘회령포진지도’(1872년)에는 동헌, 객사, 장교청, 사령청, 군기고가 성 안에 있으며, 밖에는 선소, 군 정박지가 있다고 서술했는데, 그 흔적 또한 이번 조사를 통해 확인했다.

회령진성과 앞 회령포구는 조선시대 선소와 선창이 있던 곳으로, 정유재란 때 칠천량해전 패전 후 경상우수사 배설이 부서진 배 12척을 이끌고 피신했던 곳이다. 이후 백의종군을 끝내고 삼도수군통제사로 복귀한 이순신 장군이 이곳 회령진성에서 난파 직전인 12척의 배를 수리, 133척의 왜선을 물리친 명량대첩의 역사적 장소이기도 하다."[출처 : 전남매일]


♧ 회진항 해안도로로 내려서다 ♧

회령진성을 내려와서 회진항 해변길을 걷습니다.
역시 어둠 속에 보이는 것이 별로 없네요.
남파랑길 안내표지를 확인하고 방향을 가늠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최대한 앞서 가는 이의 랜턴 불빛이 사라지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는데 신경을 쓰게 됩니다. 적어도 날이 밝을 때까지는...

♧ 천년학세트장 ♧

해안도로를 벗어나 마을 안쪽으로 조금 걷자 영화 "천년학"을 촬영했던 장소를 만났습니다.
이청준씨의 원작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임권택 감독이 영화로 만든 '천년학' 세트장입니다.

♧ 선학동 ♧

천년학세트장에서 약 7분 후 선학동 마을 표지석을 만났습니다.
본래 선학동마을은 산저마을로 불리었는데 임권택 감독의 천년학 영화가 개봉되자 선학동마을로 이름을 바꿨다고 하네요.
표지석에서 우측으로 대로를 따라 올라가자 선학동마을 유래를 설명하는 안내판을 만났습니다.


"이청준문학길은 회령포에서 회진면 진목리까지 이어진다. 평탄하고 한적한 도로가 여행객들과 함께 한다. 길은 점점 바다와 가까워지면서 노력도와 다도해의 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푸른 바다 풍경에 취해 걷다보면 어느덧 임권택 감독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 촬영지로 유명한 선학동마을에 다다른다.
'천년학' 원작은 이청준 단편 '선학동 나그네'로 소리꾼 유봉 밑에서 자란 동호화 송화의 아름다우면서도 아픈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 선학동원 소설의 실제무대로 원래 명칭은 산저마을이었지만 영화가 개봉한 이후 선학동으로 바뀌었다.
선학동마을은 유채마을로 유명하다. 마을 주변에 유채가 많기 때문이다. 영화로 유명세를 탄 이후 마을 주민들이 유채와 메밀을 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봄이면 노란 유채 물결이 넘실댄다. 가을이면 하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나지막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선학동마을은 소설 속에선 관음봉이라고 불린 공기산이다. 마을로 들어서기 전에 길가에 낡은 집 한 채가 보인다. 주막으로 나왔던 '천년학' 세트장이다. 여기에서 동호와 송화가 엇갈리는 장면이 이어질 수 없는 인연임을 나타낸다. 영화는 학 두 마리가 날아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천년학 세트장에서 논과 주택 뒤로 공기산의 풍경을 바라보니 영화의 장면들이 떠오른다."[출처 : 파이낸셜뉴스]


♧ 학 조형물을 지나서 ♧

어둠 속에서 하얀 색 조형물이 있어 가까이 가서 보니 '입을 맞추고 있는 쌍학' 두 쌍을 형상화했습니다.
안내문 내용을 보더라도 고려시대 이후 2011년까지 공지산 아래에 있다해서 '산저마을'이라고 불렀다는 것인데 이청준 소설 '선학동 나그네'를 원작으로 한 영화가 개봉되자 천년이상 유지해온 마을이름을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새삼 문화산업의 영향력을 다시 느끼게 됩니다.
이곳에서는 유명 배우부부의 한달살기 프로그램도 촬영했나 봅니다.
자세히 보니 이정표에 표기되어 있네요.

♧ 학산 등산로 입구 ♧

이제 서서히 고도를 높혀 올라갑니다.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끝이 나고 멋진 쉼터 정자 옆에 이정표가 있는데 '학산 등산로'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낮은 산을 하나 넘는다고 하더니 이곳인가 봅니다.

♧ 학산을 오르다 ♧

학산을 오릅니다.
짧지만 상당한 가파른 곳도 있어요.
하지만 찾는 이들이 많은 지 산길은 상당히 좋습니다.
램블러 지도를 아무리 확대해서 찾아봐도 '학산'이라는 지명은 없습니다.
그냥 이곳 사람들이 선학동 뒷산이라는 뜻으로 줄여서 학산이라 부르는 것 아닐까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 진목마을회관 ♧

학산등산로 입구에서 약 40분 후 진목마을회관으로 내려왔습니다.
마을회관 앞 노거수가 범상치 않습니다.
이제 이곳 출신 작가이자 오늘 트레킹의 부제 중 하나인 '이청준 소설문학길'이라는 이름과 선학동이라는 마을이름까지 작명해낸 이청준 작가의 생가를 들를 차례입니다.

♧ 이청준 생가 ♧

진목마을회관 앞에 마을유래 안내문이 있습니다.
"옛날부터 '참냉기골'이라 불렀는데 마을 앞에 있는 안산이 책상처럼 놓여져 있어 이름난 문인이 많이 배출되었으며 '마장골'에서는 임진왜란 때 군마를 길렀다"고 적혀 있네요.

마을 내에 이청준 작가 생가 이정표가 잘 되어 있어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마지막 사진이 생가 모습입니다.

♧ 덕촌간척지들 ♧

진목리 마을을 벗어나자 아주 너른 들녘이 펼쳐졌습니다.
너른 들녘 가운데 농로를 따라 걸어갑니다.
물론 전봇대에 남파랑길 안내표지가 붙어 있어 잘 살펴야 합니다.
이름이 궁금해서 램블러지도를 확인해보니 '덕촌간척지들'이라 표기되어 있습니다.
음..
본래 바다였는데 방조제로 바다를 막아 농지를 만든 곳이군요.

♧ 한우농장이 많이 보여요 ♧

'덕촌간척지들'의 새벽 모습도 아주 볼만은 한데 바람이 참 매섭습니다.
우측에서 소울음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려서 보니 소를 키우는 농장들이 보였습니다.

어느덧 여명이 밝아와서 헤드랜턴을 벗어 버리고 길을 이어갔습니다.
오늘 아주 오랫만에 남해 해돋이를 보려나?

♧ 이미 해가 올라온 듯.. ♧

해가 올라오는 방향을 되돌아보니 붉은 기운이 산 위까지 올라온 것으로 보아 해가 해수면 위로 올라온 듯 합니다.
오늘은 '덕촌간척지들'의 아침 모습을 눈에 담고 갑니다.

♧ 덕촌방조제 ♧

너른 들녘 가운데로 난 농로를 걷다가 남파랑길 안내표지가 바다쪽으로 가라고 합니다.
바로 덕촌방조제입니다.
방조제와 '덕촌간척지들' 사이에는 습지대가 있네요.
덕촌방조제 위에서 바다 위에 보이는 섬은 램블러 지도를 확인해보니 약산도입니다.
이제 방조제를 따라 방조제 끝까지 갑니다.

♧ 신상 방조제(?) ♧

방조제를 만든지 얼마 되지 않았나?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것처럼 방조제 위에는 자갈길이 끝까지 이어집니다.
방조제 위를 걸어가는데 새벽바람이 장난 아니게 불어댑니다.
그나 저나 아침 해가 뜨긴 뜬건가?

♧ 덕촌방조제를 건너다 ♧

덕촌방조제 위를 걷다가 매서운 해변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방조제 아래길로 내려와서 방조제를 건넜습니다.
이제 진목리를 떠나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읍 덕촌리로 들어 온 것입니다.
방조제에 처음 올랐을 때 정면에 보이던 약산도가 멀리 뒷편으로 물러났습니다.

♧ 덕촌리 해안 ♧

덕촌방조제 위로 올랐을 때 '건설한지 얼마 않되는 신상 방조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덕촌리에 들어와서 그 이유를 알았습니다.
신상은 아니고 두번째 사진에 보듯이 개보수공사를 했고 공사가 작년말에 끝이 났군요.

♧ 아침해를 보긴 봤습니다 ♧

덕촌리를 지나서 잠두리로 들어왔습니다.
잠깐 해변을 벗어 났다가 다시 해변길을 만났습니다.
잠두리 해안을 만나 해안길을 걸으면서 뒤를 돌아보니 아침해가 이미 솟아습니다.
해수면 위로 올라오는 모습은 아니지만 모 이정도면 그리 나쁘지 않네...

♧ 잠두리해안에서 보이는 저곳이 약산도? ♧

잠두리 해안길을 걷승니다.
트레킹을 할 때에는 첫번째, 두번째와 세번째 사진에 보이는 바다 건너편이 약산도인 줄 알았는데 트레킹 기록을 정리하며 보니 섬이 아니라 튀어나온 육지돌출부이고 다섯번째 사진에서 뒤에 흐리게 보이는 섬이 약산도였습니다.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저곳은 한우목장인 듯....

♧ 신리로 들어오다 ♧

이제 대덕읍 잠두리를 벗어나 대덕읍 신리로 들어 왔습니다.
이제부터 남파랑길은 앞서 보았던 리아스식 해안의 튀어나올 돌출부위를 해변따라 돌아가지 않고 내륙으로 가로지르게 됩니다.
잠시 돌출부믜 반대쪽에 도달할 때까지 바다모습은 못보게 됩니다.

♧ 오성금삼거리 ♧

신리마을입니다.
행정구역상으로 이곳은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읍 신리입니다.
세번째 사진에 보듯이 마을 표지석에는 '서신'이라 표기되어 있네요.
아마도 동신마을이 또 있는 듯 합니다.
그닌저나 마을 벽화그림이 아주 강렬합니다.
다섯번째 사진에 보이는 건물이 눈에 띄어 가까이 가서 보니 모 집안 종친회 건물인 듯 합니다.
그렇게 도로를 따라 걸어 내려와 오성금삼거리에 도착합니다.

♧ 하분마을 표지석에서... ♧

오성금표지석을 본 후 그 반대방향으로 걸어가서 하분마을 표지석을 만났는데 내가 못 본 것인지 남파랑길 안내표지를 잃어 버렸습니다.
강진군 마량면으로 들어왔는데 국도를 따라 계속 가야될지 아니면 왼편의 너른 들녘에 보이는 농로를 따라 걸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습니다.
이리 저리 안내표지를 찾다가 포기하고 마을 주민에게 물어보니 하분마을 표지석 맞은 편(다섯번째 사진) 길로 돌아 들어와서 자신이 서 계시는 곳에서 계속 직진해서 가라고 합니다.

다섯번째 사진에 그분이 서서 골목길 방향을 가리키고 계십니다.
너무 감사했습니다.

♧ 다시 남파랑길 안내표지를 만나고.. ♧

그 마을 주민이 일러준 길을 따라 계속 콘크리트 포장길을 걸어가자 남파랑길 안내표지가 있습니다.
길을 잘못 든것은 아니고 제대로 오긴 했는데 오성금삼거리에서 하분마을 표지석까지 안내표지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진에 보이듯 습지대를 지나서 작은 배수갑문에 도착했습니다.

♧ 다시 바다로 나오다 ♧

그렇게 배수갑문을 지나 해안도로로 나오자 다시 남해바다를 만났습니다.
해안도로 아래 해변에는 매생이가 지천에 널려있네요.

♧ 고금대교 ♧

해안도로를 걸어 가는데 큰섬과 연결된 멋진 다리가 나타납니다.
램블러 지도를 확인해보니 '고금대교'이고 그렇다면 저 섬은 고금도입니다.
드디어 신마항에 들어 왔습니다.
하분마을에서 이곳까지 약 24분 걸었습니다.

♧ 마량교를 건너서.. ♧

신마항에서 사진에 보이는 다리 하나를 건너서 마량항으로 향했습니다.
이제 남파랑길 80코스 종점인 마량항이 불과 1.3km 남았습니다.
이곳 신마항 해변에도 온통 매생이 천지입니다.

♧ 고금도와 고금대교 ♧

아마도 고금대교와 연결된 큰 섬이 고금도이고 그 옆 뒤쪽으로 보이는 섬이 약산도일 것입니다.
강진만 남해바다가 햇빛을 역광으로 받아 눈이 부시다!!
저 멀리 고금대교 너머로 어럼풋 보이는 큰 섬은 아마도 완도이겠지요.

♧ 이제 마량항으로 드갑니다 ♧

해안도로를 따라 '강진신마항관리사무소' 앞을   지나 약 150m 전방 삼거리에서 우측 도로를 따라 걸었습니다.
이제  마량항으로 들어갑니다.

♧ 마량항 ♧

마량항에 들어왔습니다.
마지막 사진에 보이는 쌍마 조형 한번 보고 인근 수산물위판장 건물 내 공중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치고 트레킹을 마감했습니다.
이곳까지 오면서 공중화장실을 찾지 못해 좀 고생했습니다.

"마량항은 평야와 산과 섬과 바다를 모두 갖추고 있는 강진 최남단 항구다. 강진의 12경 중 하나인 마량항은 ‘한국의 나폴리’로 불릴 만큼 아름답다. 마량항은 천연기념물 제172호인 까막섬과 완도 고금도를 잇는 다리 등 풍광이 뛰어나고 생동감 넘치는 친수공간으로 활력이 넘치는 곳이다.

마량(馬良)은 ‘말을 건네주는 다리’란 뜻이다. 7세기 무렵 제주를 오가던 관문으로 조공을 목적으로 제주에서 실어 온 말들을 중간 방목하던 목마장이 있었던 곳이다. 말은 이곳에서 일정기간의 훈육을 마친 다음 다시 한양으로 옮겨졌다."[출처 : 동아일보]


♧ 마량항 이모조모 ♧

마량항의 모습입니다.
아주 큰 항구답게 식당도 카페 및 편의점도 많이 보입니다.
두번째 사진에 보이는 것은 '강진애'라는 노래비입니다.
네번째 사진은 '마량놀토수산시장' 입구모습.

그런데 첫번째 사진에 보이는 시비는 '고수목마'라는 한시인데 '곶자왈에 기르는 말'이라는 부제가 달려 있습니다.

곶자왈에서 기르는 말?
왠 뜬금없이 마량항에 제주도 말이야기가?
트레킹 할 때 조금 의아했는데 기록을 정리하면서 아래 글을 보니 왜 시비가 이곳에 있는지 이해가 갔습니다.

"마량의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탐진은 강진의 옛 지명이다. 탐진현으로 불리다가 강진현으로 바뀐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다. 탐진은 지금의 제주도인 탐라의 사자가 조공할 때 배가 마량항 인근에 있는 구강포에 머물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한마디로 마량은 탐라로 가는 해상교통의 관문이었던 셈이다.

뿐만 아니라 고려시대에는 칠량면 등 강진만 일대에서 만든 고려청자를 개성까지 실어나르던 500km 뱃길의 시작점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제주에서 실려 온 제주마들이 육지에 처음 발을 디딘 곳이었다. 탐라에서 뱃길을 따라 실려 온 말들이 뭍에 처음 내려서 먹이를 먹었던 곳이라 하여 마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마량에 내린 말들은 일정 기간 동안 육지 적응 훈련을 받고 한양으로 옮겨졌다. 마량항 인근에는 말들이 쉬어 가던 쉼터가 있는 신마마을이 자리했다."[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여행이야기]



☞ 트레킹을 마치고...[ 신마항을 지나며 본 매생이 밭 ]☜


마량항에서 남파랑길 80코스를 마감하고 카페를 찾았지만 카페는 오전 10시에 문을 여는군요.
하는 수없이 인근 편의점에서 따뜻한 커피 한잔 내려 마시면서 쉬었다가 남파랑길 81코스를 이어갔습니다.

초반에 선학동 산길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평이한 구간이었습니다.
다만, 역시 너른 들녘과 해안에 매섭게 불어오는 바다바람에 조금 추웠던 트레킹이었습니다.

서신마을 지나 오성금 표지석부터 하분마을 표지석까지 중간에 농로를 가로질러 가는 길이 있었을 것 같은데 표지를 확인 못해서 조금 당황했던 것 빼고는 길을 찾는데 어려움은 없었던 구간이었답니다.

♧ 바다에 오는 이유 ♧


                                                 -  글  이생진


누군가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니다
모두 버리러 왔다
몇 점의 가구와
한쪽으로 기울어진 인장과
내 나이와 이름을 버리고
나도
물처럼
떠 있고 싶어서 왔다

바다는 부자
하늘도 가지고
배도 가지고
갈매기도 가지고
그래도 무엇이 부족한지
날마다 칭얼거리니